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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의 길을 묻다] ② 농구 파워피플 1위 유재학 감독

입력 | 2018-04-13 05:30:00

프로농구 최장수 사령탑인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최근 스포츠동아가 실시한 한국 스포츠 파워피플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현역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종목별(농구) 영향력 1위에 올랐다. 미국 출국에 앞서 만난 유 감독은 “이번 결과가 개인적으로는 부끄러울 따름”이라며 멋쩍어하면서도 한국농구와 체육 전반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뚜렷하게 밝혔다. 용인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스포츠동아는 지난 3월 창간 10주년을 맞아 체육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국 스포츠를 움직이는 파워피플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스포츠 전체 뿐 아니라 각 종목별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도 선정했다. 그 결과 농구에서는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55) 감독이 1위에 올랐다. 야구·축구·배구·골프는 물론 일반 스포츠 종목까지 통틀어 현역 감독이 해당 종목의 영향력 1위에 오른 것은 유 감독이 유일했다.

현재 새 시즌 준비를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는 유 감독은 최근 출국에 앞서 스포츠동아와 만나 “지난 3월 보도된 설문조사 결과를 직접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 농구를 위해서 대한농구협회장을 비롯해 KBL 총재, WKBL 총재 등 큰 역할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는 감독 이외에 다른 일은 잘 하지 않고, 외부 활동도 거의 안 한다. 개인적으로는 (설문 결과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사가 나온 직후 장모님이 직접 전화하셔서 ‘가문의 영광’이라고 말씀을 하시더라. 사실 한 종목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인 것은 맞다. 그런데 스스로를 돌아보면 그 만큼 엄청난 평가를 받을만한 일을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부끄럽고, 쑥스럽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남자프로농구 최장수 사령탑이다. 1998년 인천 전자랜드의 전신인 대우증권 제우스에서 사령탑에 오른 이후 현재까지 단 한 시즌도 거르지 않고, 감독직을 유지했다. 팀만 몇 차례 바뀌었을 뿐이다. 유 감독은 2004년 현대모비스로 자리를 옮긴 이후 리그 3연패 등 총 5번의 우승을 일궈냈다. 현역 감독 중 통산 최다승 행진도 이어가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한국이 2002부산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되찾는데 앞장섰다. 국내 무대 뿐 아니라 아시아 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지도력을 과시했다. 그에게는 ‘만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1만 가지 수를 가진 지도자라는 뜻이다. 유 감독은 이러한 평가에 대해 “천수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농구 관계자와 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힌다.

유 감독은 “오랜 기간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분과 우승을 여러 번 했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알아보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본다”며 웃었다. 외부활동을 잘 안 하는 유 감독지만 지난해 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경기력향상위원회는 16세 이하(U-16)부터 성인까지 남녀 대표팀 감독 선임과 선수 선발 등을 관장하는 위원회다. 그에게 농구계가 많은 걸 기대하고, 의지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 용인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그는 “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내가 모든 걸 다 관장하기에는 벅찬 부분이 있다. 특히 여자농구는 내가 깊이 알지 못한다. 그래서 소위원회를 따로 뒀다. 성인대표팀에 집중하는 편인데 직함 때문인지 사람들이 내가 (한국농구에서) 많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고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농구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는 대번에 진지한 얘기들을 쏟아냈다.

“요즘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려면 미디어 등에 최대한 노출이 돼야 한다. 그런데 농구는 그걸 너무 못한다. 미디어하고의 관계도 너무 안 좋아 보인다. 그게 가장 아쉽다”, “농구 발전을 위해서 한 길로 가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부족한 것 같다” 등등 열변을 토했다.

유 감독은 기자들과 만나면 속에 있는 얘기까지 시원하게 쏟아내는 스타일이다. 특히 농구적인 부분은 더 그렇다. 그로 인한 오해도 받는다. 상대 팀 선수에 대한 평가 등 민감할 수 있는 얘기를 가감 없이 한다. 그런 내용이 공개돼 머쓱했던 기억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이런 얘기까지 했을까‘라고 후회하기도 한단다.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 용인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내가 잘 아는 게 농구밖에 없다. 농담을 잘하는 등 달변가도 아니다. 그렇다보니 농구 얘기가 나오면 내가 가진 생각을 솔직히 다 얘기하는 편이데 그래서 더 오해를 받는다. 머리가 좋고, 잔머리도 쓸 줄 알면 괜찮은데 난 단순한 편이다. 감독 생활을 20년 가까이 했는데 트레이드도 선수들을 엮어서 해보질 못했다. 머리가 나쁜 거다. 다음부터 조심해야지 하지만 농구 얘기를 하다보면 또 민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 성격상 잘 안 된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행정가로 변신한 농구 선배들과 언쟁을 벌인 적도 있다고 했다. 농구 발전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만큼 농구라는 종목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유 감독이다. 그는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을 해야 한다. 앞으로 현대모비스가 KBL 총재사가 된다. 새로운 총재가 선임될 텐데 내가 현대모비스 감독을 맡고 있지만 농구 발전을 위해서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것이다. 그게 내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 한다”고 확고한 신념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한국 스포츠 전반에 걸친 발전을 위한 제언을 부탁했다. 유 감독은 한참 고민하다 “얘기를 시작하면 결국 정치까지 이어질 것 같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구체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교육 정책에 관한 얘기인 듯 했다. 대신 유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 사진제공|KBL


“우리 애들이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큰 애는 고교 시절 농구와 미식축구를 했다. 작은 애는 배구를 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미국에서는 학교를 다닐 때 한 가지씩 자신의 특기를 살리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공식 대회에도 출전하도록 한다. 그래서인지 큰 애가 친구들끼리 모여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보면서 그에 대한 토론을 하는 걸 봤다. 이처럼 스포츠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서도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자랄 때와 환경이 많이 다르다. 엘리트 체육만 해서는 쉽지 않은 시기가 왔다. 미국, 일본 등 좋은 나라의 모델을 찾아서 우리에게 맞는 변화를 빨리 가져가야만 한국스포츠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 유재학 감독은?

▲생년월일=1963년 3월 20일
▲출신교=상명초~용산중~경복고~연세대
▲지도자 경력=연세대 코치(1993~1997), 대우증권 코치(1997~1998), 대우증권 감독(1998~1999), 신세기(SK) 빅스 감독(1999~2003), 전자랜드 감독(2003~2004), 현대모비스 감독(2004~현재)
▲대표팀 지도자 경력=2010광저우아시안게임 감독, 2013아시아선수권 감독, 2014인천아시안게임 감독
▲주요 경력=KBL 정규리그 우승 5회,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5회, KBL 감독상 4회, KBL 최초 정규리그 600승 달성,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은메달, 2014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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