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목해서 봐야할 프로필이다. 문화계 전반에서 이런 프로필을 가진 할매할배들이 급부상 중이다. 그동안 노인이나 노년문제를 다룬 콘텐츠는 대중성과 거리가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진취적이고 발랄할 세계관을 가진 70대 이상 할매할배들이 문화계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힙한’ 할매할배들이다.
● ‘소녀감성 할매’에서 ‘할매 페미니스트’까지
출판계에서는 아흔 살이 넘은 저자들이 쓴 에세이집이나 이들을 다룬 책이 쏟아지고 있다. 올해 1월에 출간된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이봄)은 다이어트로 자기관리를 하고 디즈니랜드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즐거워하는 소녀 감성 충만한 아흔 살 할머니의 이야기다. ‘젊은 내가 더 할머니 같이 산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독자들의 호응이 쏟아지며 출간 첫 주에만 3000권이 팔렸다.
요즘 인기있는 할매할배는 체면치레, 그럴듯한 어른노릇보다는 모험, 열정에 우선순위를 둔다. 전문의로 일하다 90세가 다 돼 등단한 김길태 할머니의 ‘90세의 꿈’(아트와), 100세에 세계적 화가가 된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수오서재)에서처럼 나이를 무색케 하는 도전정신도 보여준다.
때론 젊은 사람보다 더 급진적인 주장도 편다. ‘나답게 살고 나답게 죽고 싶다’(21세기북스)를 쓴 ‘오싱’의 작가 하시다 시카코(93)는 “신나게 살다 깔끔하게 안락사로 죽고 싶다”는 도발적 주장으로 화제가 됐다. 출판사 측은 “이 저자는 최근까지도 크루즈 여행과 세계 일주를 떠나며 왕성하게 낯선 세계를 탐험하고 있다”고 전했다.
● 카리스마형 어른 지고 소통형 어른 뜨고
‘윤식당’의 중심축 역할을 한 배우 윤여정 씨는 젊고 활달한 감각으로 아들 딸 또래의 배우들과 위화감 없이 어울리며 균형을 잡았다.
속사포 랩도 거뜬히 소화해 ‘할미넴’‘국민 할매’로 인기를 얻은 배우 김영옥 씨는 최근 조부모를 소재로한 예능프로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할매할배들의 발랄한 감각과 도전정신, 열린 마음과 소통, 포용하고 배울 줄 아는 삶의 태도가 그간 빈 칸으로 남아 있던 우리 시대 새로운 어른의 ‘롤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은영 대중문화평론가는 “훈계하는 ‘카리스마형 어른’이 지는 대신 소통하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새로운 어른들이 대중의 각광을 받고 있다”며 “젊은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원숙함과 지혜를 갖춘 할매할배들이 이상적인 모습의 어른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