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의 끝~업무 시작!’
야근은 덤, 돌고 도는 ‘답정너 회의’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
#2.
10년 전 대한민국 정부의 사무관이 됐다.
모교 정문에 ‘최상우(가명·36)’ 석 자가 적힌 행정고시 합격자 펼침막이 걸렸다.
10년이 흐른 지금, 그런 다짐은 반복되는 ‘답정너 회의’를 거치며 백기를 든 지 오래다.
#3.
우리 부서의 회의는 한 주에 세 번.
월요일엔 국장 주재 회의, 수요일은 과장이 회의를 주재한다.
특별히 논의할 게 없어 시답잖은 농담만 하더라도 무조건 열린다.
금요일 회의는 월요일 국장 주재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다.
그야말로 회의를 위한 회의인 셈.
특히 장관이나 국장의 특별 지시가 떨어지면 야근과 주말 근무가 덤으로 얹혀진다.
‘돌발 회의’가 더 많은 게 문제다.
국무회의나 각 부처 장관들이 모이는 회의 직전에는 그 회의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가 시도 때도 없이 열린다.
고위급 회의가 끝나면 결과를 공유하는 회의가 또 소집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회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5.
청사를 세종시로 옮긴 뒤 회의에 대한 생각은 더 ‘회의적’이 됐다.
국장은 종종 서울에서 회의를 소집한다.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해야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나? 샘솟는 건 짜증뿐이다.
서울에서 회의를 하는 날엔 최소 4시간을 길에다 버려야 한다.
‘시간 도둑’ 회의 덕에 그날 하지 못한 업무로 다음 날은 ‘자동 야근’이다.
[회의]:여럿이 모여 지시(指示)를 받다
회의를 ‘회지(會指)’라고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아는 회의는 ‘여럿이 모여 지시(指示)를 받는’거다.
지난주 회의 때도 국장은 의논 없이 각종 지시를 내리꽂았다.
동기 카톡방에 ‘오늘도 답정너 회의했다. 주말 출근 확정’이라고 올리자
‘나도, XX’라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7.
정부는 공무원의 초과근무를 40% 줄이고, 연가 사용을 100%까지 끌어올린다는 ‘근무혁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코웃음을 쳤다.
회의를 위해 이동하는 시간만 일주일에 8시간이 넘는다. 회의 때문에 주 3회 이상 야근하고, 주말에도 하루는 꼭 출근한다. 초과근무를 줄이기 위한 답은 정해져 있다. 아무도 답을 하지 않을 뿐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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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20.(화)
동아일보 디지털뉴스팀
사진 출처l 동아일보DB·Pixabay· FLATICON
기획·제작l 유덕영 기자·김채은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