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의 지명을 철회한 것과 관련해 한국 정부에 양해를 구했다고 외교부가 어제 밝혔다. 내정 철회 사실을 한국 측에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미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 양해를 구한 것이다. 이번 일은 한미공조가 최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그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신뢰와 소통에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지난해 말 차 내정자 경질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 내정자는 1월 초 지인에게 자신이 탈락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이전에 주한 미 대사가 부임하기를 희망했던 우리 정부도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지난달 두 차례 외교채널을 통해 신속한 대사 부임을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진행 중”이라는 짧은 답변만 했을 뿐 내정 철회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공개할 수 없는 내밀한 진행 상황도 공유하면서 함께 대책을 세우는 게 동맹이고 우방이다.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가 서로 터놓고 속내를 얘기할 만큼 신뢰가 두텁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3개월째 이어지는 주한 대사 공백 상태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대사가 동맹 간 정책 협의의 유일한 채널은 아니지만 북핵 위기 국면에서 대사의 공석 장기화는 여러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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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차 내정자 지명을 철회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코피 터뜨리기(bloody nose)’에 대한 비판적 견해였다는 점은 한반도에서 군사작전이 실제 벌어질 가능성을 재확인시켜 준다. 그게 실제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할 유일한 길은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여 북한이 비핵화 테이블로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대화가 이뤄지면 실제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외교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와 입증된 성과가 필요하다. 정부가 이번 남북 접촉 과정에서처럼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북의 오만한 자세를 제어하지 못하면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말발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