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유럽의 ‘삐삐 롱스타킹’
스웨덴의 삐삐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삐삐 캐릭터를 바라보고 있다. 김이재 교수 제공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
말괄량이 삐삐는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었다. 소심하고 차멀미가 심했던 한국 소녀는 ‘삐삐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꿈에 이끌려 100여 개 나라를 여행한 지리학자로 진화했다. 수많은 곳을 다니며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삐삐의 인기가 높은 나라일수록 어린이가 행복하고 양성 평등적인 사회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삐삐 롱스타킹’의 저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20대 초 미혼모로 힘든 시기를 견디고 30대 후반 작가로 데뷔했다. 아픈 딸을 위해 행복했던 개구쟁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삐삐 캐릭터를 창조했다. 95개국에 소개된 ‘삐삐…’는 18번째로 많이 번역된 책이 되었다. 어린이 체벌 금지와 동물 복지 증진에도 기여했던 린드그렌은 스웨덴 20크로나 지폐 모델이 될 정도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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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삐삐를 읽은 어린이들은 비합리적인 권위에 조금씩 저항하기 시작했다. 소녀들은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꿈을 실현하려 했다. ‘삐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사회에 진출해 목소리를 내면서 스웨덴은 소수자를 존중하는 성숙한 나라로 진보해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처럼 여성들이 맹활약하는 독일도 삐삐의 인기가 높은 나라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이름을 딴 학교만 170개가 넘고 소녀들은 가장행렬 캐릭터로 삐삐를 많이 선택한다. 독일은 GGI(12위) 상위권이다.
같은 유럽이지만 그리스(78위), 이탈리아(82위), 헝가리(103위)는 상대적으로 여권이 낮다. 재미있는 건 이들 나라 소녀들이 신데렐라형 여주인공이 나오는 동화책을 읽고, 예쁘고 날씬한 공주풍 인형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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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그렌의 고향 X메르비의 삐삐 마을에서는 지도를 보며 흥미로운 곳을 스스로 찾아가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다. 새해에는 자녀에게 ‘삐삐의 마법’을 부르는 책과 인형을 선물하고 젊은이들이 넓은 세상을 신나게 탐험하도록 ‘삐삐의 지도’를 건네주면 어떨까.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