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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이윤화의 오늘 뭐 먹지?]한옥 골목 모던 바에서 칵테일 한 잔

입력 | 2018-01-25 03:00:00


텐더바의 칵테일과 간단한 안주. 이윤화 씨 제공

식객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매일 닥치는 끼니도 고민이지만 괜스레 딱 한잔이 당길 때가 있다. 요즘처럼 북극 한파가 몰아치면 더욱 그렇다. 한동안 요리 공부를 위해 머물렀던 일본 도쿄 거리에 얽힌 사연과 변해 가는 서울의 한 골목 풍경이 오버랩된다.

도쿄 신주쿠 인근에 골든가라는 거리가 있다. 200여 개의 작은 술집이 모인 이 거리는 밤 문화를 사랑하는 성인들의 ‘작은 디즈니랜드’를 방불케 한다. 그런데 명소 거리로 자리 잡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이 지역은 1980년대 재개발 붐으로 철거 위기에 처했다. 일부는 술집을 팔고 나가기도 했지만 더 많은 술집 오너는 반대파의 방화 사건이나 각종 회유 속에서도 거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특히 이 싸움에는 각 술집의 단골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나섰다.

그중 ‘센타쿠센(洗濯船)’이라는 술집의 여주인 요시나리 유키코 씨는 당시 앞장서 밤거리를 지켜내 ‘골든가의 잔다르크’로 불렸다. 어느덧 40년째 가게를 운영해 그 자신도 거리의 역사가 됐다.

뜻밖에 내자동으로 불리는 서울지방경찰청 인근에도 특색 있는 바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원래 노포(老鋪)의 홍어와 한정식으로 알려졌지만 소문을 들은 술꾼들의 발길이 늘고 있다.

이곳에도 좁은 한옥 골목을 운치 있는 바로 변신시켜 놓은 여성 선구자 김선정 씨가 있다. 그는 일본의 유명 바텐더 우예다 가즈오 씨의 제자로 상호도 스승의 텐더바를 그대로 쓰고 있다.

야심한 밤, 이 골목에 들어선다면 누구든 갸우뚱하며 대문 앞에 멈추게 된다. 한옥에선 홍어 한 접시와 막걸리를 마시는 어르신 모임이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예상과 다른 풍경이 나오기 때문이다. 서까래와 대들보 등 뼈대를 잘 살린 모던 바들이 등장한다.

첫 방문객들은 당황할 수도 있다. 커버차지(자릿세)라는 것이 있고 정해진 메뉴가 따로 없다. “메뉴판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처음 온 티를 내는 꼴이다. “뭘 드릴까요?”라고 바텐더가 말했을 때, 머릿속에 정한 술이 따로 없다면 그날의 자신의 느낌이라도 잘 표현하면 좋겠다. “오늘 쌀쌀하게 바람도 부는데, 버번 베이스로 뭐가 좋을까요? 도수는 높지 않은 걸로요”라고 말한 뒤 바텐더와 서너 번 이야기를 주고받다 범위를 좁히면 드디어 ‘오늘의 술’이 정해진다. 술을 결정하는 통과의례가 끝날 무렵 술안주부터 찻잔에 나오는 따뜻한 치킨수프, 그리고 바텐더와의 소통까지…. 술꾼이라면 그야말로 동경해온 모습이다.

조용한 거리에 흥미진진한 바가 늘어나는 것과 단골의 충성도가 각별한 것은 골든가와 내자동 골목의 공통점 아닐까. 혼자 또는 2, 3명이 즐기기 좋은 술집들이다.

식객 이윤화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 텐더바: 서울 종로구 사직로12길 17, 02-733-8343. 김렛 등 칵테일과 위스키. 커버차지 1인 5000원
○ 코블러: 서울 종로구 사직로12길 16, 02-733-6421. 칵테일 코블러와 한잔 술이 다양
○ 돈패닉: 서울 종로구 사직로 12길 2, 02-3210-0333. 커피와 위스키 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