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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안 주면 무조건 공개? “유죄 확정된 사업주만 제재”

입력 | 2018-01-25 03:00:00

[팩트 체크]최저임금 위반 사업주 명단 공개 논란, 진실은?




최근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올해 시급 7530원)을 지키지 않은 사업주의 이름을 공개하고, 신용 제재(대출 제한 등)를 가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고용부는 “위반 사업주 모두를 공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을 차단하기 위해 ‘인민재판’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고용부의 해명대로 최저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해서 무조건 이름이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용부가 처음부터 정밀하게 대응했다면 논란을 키우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의 실명 공개 논란의 진실을 ‘팩트체크’했다.

○ 공개 대상은 위반 사업주의 5% 안팎

고용부는 15일 임금체불 사업주 198명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앞으로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 명단도 함께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18일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같은 계획을 내놓았다. 당시 고용부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대표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공개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개정안에선 명단 공개 대상을 기준일(명단 공개일) 이전 3년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업주로 한정하고 있다. 사업주가 최저임금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되면 정부는 일단 시정명령을 내린다. 최저임금보다 적게 준 임금을 근로자에게 주라는 행정명령이다. 사업주가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만약 사업주가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과태료를 내지 않으면 고용부는 검찰의 지휘를 받아 사업주를 입건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이때 최저임금 위반 행위가 고의적이고 악질적이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고의적이고 죄질이 나쁘다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고용부 의견을 참고한다. 검찰의 자체 판단에 따라 기소를 유예하거나 무혐의 처분을 내릴 수도 있다. 만약 검찰이 고용부와 같은 판단으로 사업주를 기소하고,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그때야 비로소 명단 공개 대상이 된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은 모든 사업주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유죄 판결을 받은 사업주는 매우 죄질이 나쁜 경우”라며 “악질범만 공개한다는 것이지, 위반 사업주를 모두 공개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6년 기준으로 최저임금 위반으로 적발된 사람은 1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 중 유죄가 확정된 사업주는 512명이다. 결국 한 해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 중 5% 정도가 명단 공개 대상인 셈이다.

○ 최저임금 위반은 임금 체불보다 더 나쁘다?

임금체불 사범의 경우 현행 근로기준법상 명단 공개일 이전 3년간 2회 이상 유죄 확정 판결을 받고, 1년 체불액이 3000만 원 이상인 사업주의 명단을 공개한다. 2회 이상 유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체불액이 2000만 원이면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 신용 제재는 2회 이상 유죄 확정 판결에 1년 체불액이 2000만 원 이상이면 가해진다. 2회 이상 유죄가 확정돼도 체불액이 1000만 원이면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최저임금 위반 사범은 1번만 유죄 판결이 확정돼도 명단 공개 대상이 된다. 체불액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극단적으로 1만 원을 체불했다고 하더라도 고의적이고 죄질이 나빠 벌금형을 받았다면 이름이 공개될 수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 위반 사범의 명단 공개 기준이 임금체불 사범보다 훨씬 엄격하면서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신용 제재는 임금체불과 같이 2회 이상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업주에게만 적용되지만 이 역시 체불액에 대한 규정이 개정안에 없다. 경영계 관계자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체불액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설익은 대책으로 논란 키운 고용부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에 시달리는 고용부는 사면초가 신세다. 최소한의 악질사범만 공개하겠다는 방침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에 논란이 커진 측면이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고용부가 원래 위반 사업주 명단을 전부 공개하기로 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태도를 바꾼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고용부는 처음부터 국회에 계류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렇다고 고용부가 논란을 키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최종 정부안이 확정되지 않은 단계에서 설익은 대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고용부의 한 관료는 “일자리 로드맵에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 제재 방안이) 이미 포함돼 있어 다소 안일하게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경제부처의 한 관료는 “논란이 커질 게 뻔한 정책을 명확한 방향도 없이 설익은 상태에서 내놓은 고용부를 이해할 수 없다”며 “가뜩이나 최저임금 때문에 온 사회가 난리인데, 고용부가 기름을 부은 격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서둘러 마련해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