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현 산업2부 기자
며칠 전 오후 5시 8분, 백화점에 입점한 지역 맛집을 취재하던 후배 기자가 메신저로 말을 건넸다. ‘몇 신데 벌써 퇴근했지?’라며 의아해하던 중 신세계그룹이 올해부터 주 35시간 근무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신세계 직원들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면 칼같이 퇴근한다. 오후 5시 30분이면 PC가 모두 꺼지니 굳이 회사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제도가 시행된 지 약 3주가 지났지만 신세계의 오후 5시 퇴근 실험은 신세계 직원들에게도, 거래처에도 아직은 낯설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점심시간이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한 시간의 여유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직장에서 받은 설움을 수다로 털어 내거나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제 신세계 직원들 사이에서 이런 여유는 사라졌다. 회사 바깥의 식당을 찾는 직원은 줄어들고 대신 구내식당이 붐빈다. 일찍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기 위해서다.
업무 중에 은행 업무를 보거나 사적인 통화를 하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래도 주어진 일을 퇴근 전까지 마치기 위해 일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 퇴근이 모두에게 좋은 것만도 아니다. 친구나 배우자를 만나기로 한 직원들은 늦게 퇴근하는 그들을 한참 기다려야 한다. 오후 5시에 퇴근시키지 않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신세계 직원에게 저녁 약속이 있으면 그때까지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고 물었다.
“뭐… 그냥 앉아있거나 스마트폰 보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게임도 하고….”
이제는 몇몇 대기업을 중심으로 긴 노동시간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신세계와 롯데 등 유통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처럼 노동집약적 근무를 해온 회사들도 일제히 근무시간 줄이기에 돌입했다.
변화의 초창기다 보니 일찍 퇴근하는 문화가 영 마뜩잖은 사람이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여전히 “일은 엉덩이로 하는 것”(오래 앉아있는 게 성과로 이어진다는 의미)이라며 일찍 퇴근하는 부하를 험담하는 상사도, 오후 5시 이후에 일처리가 안 된다며 투덜대는 거래처 직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월급을 주고받는 사이도 아닌데 직원들끼리 서로 감시하고 눈치 보느라 회사에서 불필요한 시간을 보내는 건 얼마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인가. 자신의 노동력을 회사에 얼마나 많이, 공짜로 제공했는지에 따라 성실성을 평가받는 기업문화는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 그래서 신세계의 오후 5시 퇴근 실험은 꼭 성공해야 한다.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쉴 때 확실히 쉬는 게 개인에게도, 회사에도 이롭다고 믿는다.
송충현 산업2부 기자 bal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