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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의 나무 인문학]자신만의 별을 만들어라

입력 | 2018-01-23 03:00:00

<30> 산수유




산수유 열매는 단풍과 함께 늦가을을 붉게 물들인다.

층층나뭇과의 갈잎중간키나무 산수유(山茱萸)는 ‘산에 사는 쉬나무’를 뜻한다. 산수유의 노란 꽃은 잎보다 먼저 핀다. 학명에는 열매를 강조했다. 산수유의 열매는 멧대추처럼 작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산수유를 ‘촉나라에서 나는 신맛의 대추’, 즉 ‘촉산조(蜀酸棗)’라 불렀다. 명대에는 촉산조를 ‘육조(肉棗)’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수유를 일찍부터 즐겨 심었다. 삼국유사에 제48대 경문왕과 관련해서 산수유가 등장한다.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길어졌다. 왕비를 비롯한 궁궐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몰랐지만 오직 모자를 만드는 장인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인은 평생 이 사실을 남에게 말하지 못하다가 죽을 즈음 도림사 대나무 숲에서 대나무를 향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 뒤에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났다. 왕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 대나무를 모두 베고 대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그 뒤에는 다만 ‘임금님 귀는 길다’는 소리만 났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에 대나무와 함께 등장하는 산수유는 신라시대 자연생태만이 아니라 정치 문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산수유처럼 사료에 등장하는 한 그루의 나무는 곧 인문생태의 가치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마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산수유도 양반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전국 어디서나 산수유를 만날 수 있지만 전남 구례군 산동면은 우리나라 최대의 산수유 산지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수령 1000년의 산수유가 살고 있다. 산동면의 산수유는 중국 산둥(山東)성 처자가 시집올 때 가져와서 심은 나무라는 얘기가 전한다. 산동면의 산수유는 열매로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고 해서 ‘대학나무’라 불린다. 경북 의성군 사곡면에도 산동면에 버금가는 산수유가 살고 있다.

나는 산수유 꽃이 필 때마다 꽃송이를 센다. 산수유 꽃은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에서 볼 때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꽃송이는 별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사람도 누구나 가슴에 자신만의 별을 갖고 있다. 인생은 곧 자신만의 별을 빛나게 하는 과정이다. 별은 어둠에서 빛나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어둠을 밝히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