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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사이트 차단, SNS기업은 경고 표시, 학교는 판별교육

입력 | 2018-01-09 03:00:00

[세계는 지금 가짜뉴스와의 전쟁]선거판-투자시장 흔드는 가짜뉴스
정부-기업-학교 3각 대응 팔 걷어




《새해 초부터 북한 핵·미사일 위협,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틈타 ‘가짜 뉴스’가 파고들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타고 번지는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좀먹고 전쟁 불안 심리를 키워 투자시장까지 뒤흔든다. 지난해 가짜 뉴스에 혹독하게 당한 유럽 국가들은 ‘가짜 뉴스 금지법’까지 마련했고, 미국 학교들은 학생들에게 가짜 뉴스 감별능력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고객님, 저희 회사가 긴급 입수한 사진입니다.”

아시아 금융의 중심인 홍콩에서 한 투자회사 직원이 최근 중년의 환경미화원에게 스마트폰으로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검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으리으리한 군함 사진이었다. 이 직원은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다. 전쟁이 일어나면 금값이 급등하니 투자를 서둘러라”라고 권했다. 살벌한 북한 뉴스를 자주 접했던 고객은 힘겹게 모은 종잣돈을 보냈다. 하지만 직원이 전한 사진은 ‘가짜 뉴스’였다. 이렇게 직원이 챙긴 수수료는 거래당 30∼50달러(약 3만2000∼5만3000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해 1∼11월 투자사 직원 21명이 이런 식의 ‘가짜 뉴스 사기’로 1643만 홍콩달러(약 22억 원)를 챙겼다고 8일 보도했다.



가짜 뉴스는 지난해 대선을 치른 주요 국가들의 선거판을 뒤흔든 데 이어, 새해에도 정치권은 물론 투자시장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에 어두워 팩트 체크에 능하지 못한 노년층은 가짜 뉴스에 쉽사리 피해를 당한다. 이를 보다 못한 유럽의 정부는 물론 소셜미디어 기업까지 나서 예방책을 내놓고 있다. 교육계도 학생들에게 가짜 뉴스를 식별할 수 있는, 이른바 ‘미디어 문맹 퇴치’ 교육에 나섰다.

○ 선거판, 투자시장까지 번지는 가짜 뉴스

가짜 뉴스는 선거에서 폭발력이 강하다.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지난해 11월 한국을 포함해 세계 16개국에서 선거 때 가짜 뉴스가 등장했다고 밝혔다.

올해 3월 4일 총선을 앞둔 이탈리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의 마테오 렌치 대표는 최근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회사들에 깨끗한 선거 캠페인이 되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해 11월 렌치 대표의 측근이 마치 마피아 보스 살바토레 리나의 장례식에 가서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SNS에서 퍼지면서 곤욕을 치렀다. 이 사진은 그가 2016년 한 이민자 장례식에 갔던 것을 교묘하게 편집한 가짜 뉴스였다.

지난해 가짜 뉴스에 호되게 당한 유럽 정부는 새해부터 강경책을 내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가짜 뉴스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예고했다. 인터넷 언론 사업자의 후원자들을 모두 공개하도록 했다. 또 선거 기간 가짜 뉴스 삭제를 요청하거나 사이트 접근을 차단하고 소셜미디어 계정을 폐쇄할 예정이다. 독일도 새해부터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기업이 가짜 뉴스나 혐오 발언을 발견한 지 24시간 안에 삭제하지 않으면 해당 회사에 최대 5000만 유로(약 640억 원)를 부과한다.

미국, 프랑스 등이 가짜 뉴스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있는 러시아도 3월 18일 대선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2016년 미 대선 때 러시아의 선거 개입이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어 미국의 복수를 걱정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러시아 선수의 도핑과 관련해 의혹을 제기하며 선수 자격을 잇달아 박탈하자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가짜 뉴스 의혹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 기업은 자정 캠페인, 교육계는 ‘미디어 문맹’ 교육

소셜미디어나 검색 사이트들이 제공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맞춤형 뉴스 콘텐츠 서비스는 가짜 뉴스의 부작용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의견을 선호하는 ‘확증편향’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걸러지지 않는 가짜 뉴스와 같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편식하는 ‘필터버블’이 나타날 수 있다.

가짜 뉴스가 소셜미디어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고 민주주의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관련 업계에서도 자정 노력이 시작됐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12월 가짜 뉴스를 신고하고, 진위 논란이 있는 뉴스를 표시하고, 가짜 뉴스에 대한 금전적 인센티브를 차단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 규제나 기업의 대책만으로 가짜 뉴스의 거센 흐름을 막기는 힘들어졌다. 2016년 미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미국 12개 주의 중고교생과 대학생 7800명을 대상으로 정보 출처 판별 능력을 조사한 결과 이들 중 80%가 뉴스와 광고를 잘 구별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이 때문에 ‘미디어 문맹’ 퇴치를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를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에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과정의 하나로 디지털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안전한 소셜미디어 사용법 등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게 한다는 설명이다. 워싱턴, 코네티컷, 플로리다, 로드아일랜드, 유타,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매사추세츠주 등이 미디어 리터러시를 교육 과정에 반영하는 법을 시행했다.




▼과거엔 풍문으로 전파, 21세기 SNS 발달로 실시간으로 퍼져… 진실같은 영향력▼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2016년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가짜 뉴스의 폭발력이 급격히 커졌지만 가짜 뉴스의 역사는 의외로 길다.

1835년 미국 뉴욕에선 일찍이 상업용 가짜 뉴스가 등장했다. “달에 인간과 비슷한 거주민이 살고 있다”는 허황된 이야기가 ‘뉴욕 선’이란 매체에 실려 화제가 됐다. 미디어의 지나친 상업주의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1923년 일본 간토 대지진 때는 일본 정부가 가짜 뉴스를 유포했다. 지진 뒤 사회 혼란을 조선인 탓으로 돌리려고 “(일본에 사는) 조선인이 우물에 약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말을 퍼뜨렸다. 이에 흥분한 일본인들은 조선인을 학살했다.

21세기 들어 미디어 기술이 발달하자 일부 대중은 ‘가짜 뉴스 만들기’를 오락처럼 즐긴다. 가짜 뉴스를 생산해 버튼 하나로 소셜미디어에 공유할 수 있는 앱이나 웹사이트도 생겨났다.

가짜 뉴스 제작 웹사이트 ‘데일리파닥’에는 최근 가상통화 기업 ‘리플’과 국내 은행들이 협약을 맺었다는 기사가 떴다. 제목을 클릭하면 기사 서두에 그럴듯한 기자의 바이라인과 날짜가 뜨지만 본문을 읽으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20, 30대 젊은 누리꾼들은 이런 기사를 제작해 돌려 보며 유머로 즐긴다. 이 사이트에는 ‘기사로 친구들을 낚아 보라’는 홍보 문구까지 걸려 있다.

해외 가짜 미디어 시장은 훌쩍 커졌다. 이스라엘에 기반을 둔 가짜 뉴스 웹사이트 ‘월드뉴스데일리리포트’는 아예 ‘풍자 뉴스’를 표방한 곳. 이 사이트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기성 언론처럼 메뉴를 꾸며 놓고 분야별 가짜 뉴스를 올려 공유한다. 사이트 방문객을 늘리기 위해 다른 국가 가짜 뉴스 웹사이트에서 인기를 얻은 게시물을 적극적으로 받아 유통한다.

가짜 뉴스가 진실보다 더 영향력을 갖는 ‘탈진실(post-truth)’ 현상마저 나타난다. 대중은 가짜 뉴스의 진위를 따지기 전에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게시물이면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나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며 공감하고 동의하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를 연구하는 존 헉스퍼드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부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가짜 뉴스 피해를 줄이려면 뉴스 이용자들이 가짜를 잘 가려내도록 교육 기회를 많이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욕=박용 parky@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