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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소방차 진입 막힌 주택가…‘길 터주기’ 훈련 소방차 직접 타보니

입력 | 2018-01-08 18:37:00


“어, 어 부딪친다. 조금만, 조금만 오른쪽으로 돌려요, 조심!”

5일 오후 서울 구로구 개봉초등학교 근처 주택가에 구로소방서 최정운 소방사(32)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 소방사는 빨간색 5t 펌프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마치 초보운전자를 가르치듯 펌프차를 향해 손을 크게 휘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펌프차 운전석에 앉은 장세웅 소방장(52)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장 소방장은 수시로 창문 밖에 얼굴을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펌프차와 주차 차량 사이 간격은 3cm 남짓. 그야말로 ‘삐끗’하면 부딪힐 상황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장 소방장이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수십 차례 반복한 끝에 가까스로 현장을 탈출했다. 폭 5m, 길이 50m의 골목길 전체를 빠져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15분. 다행히 훈련 상황이었지만 실제 비상출동 때라면 이미 ‘골든타임(5분)’을 넘겼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후 전국 소방서별로 길 터주기 훈련이 실시 중이다. 소방차 통행을 가로막는 불법 주차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주차 차량이 많은 주택가에서 ‘마의 구간’은 커브길이다. 덩치 큰 소방차가 통과할 최소 회전반경 확보가 어려운 탓이다.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전신주도 소방차에는 걸림돌이다. 전신주 옆에 차량이 서 있다면 골목길이 더 좁아져 소방차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날 훈련 때도 소방차는 구로구 고척근린시장 근처 골목의 커브길을 통과하느라 애를 먹었다.

근처 골목길 한쪽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함 앞에는 지름 1m 남짓한 대형 화분이 서 있었다. 비상소화장치함은 소방차 도착이 늦어질 경우 초기에 불을 끌 수 있게 각종 소화장비를 모아놓은 보관함이다. 백승택 소방위(55)는 “한 주민이 비상소화장치함 앞 공간을 자신의 전용 주차장처럼 쓰려고 갖다 놓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법 주차 해결을 위한 대책을 장단기로 나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우선 불법 주차 단속을 교통이 아니라 안전 차원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는 “미국처럼 수십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강제성 있는 조치를 도입해야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부족한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한 도시정책이 필요하다. 공하성 경일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공공장소 내 무료주차장 확대 같은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날 다중이용업소가 밀집한 지역의 불법 주정차 금지를 강화하는 내용의 대형화재 인명구조 대책을 발표했다. 불법 주정차가 빈번한 구역에는 폐쇄회로(CC)TV 설치를 확대하고 주차문화 개선을 위한 홍보도 강화한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