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한국 축구의 계보를 잇는 골잡이 출신 이회택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축구인을 평가할 때 “대표 해봤어”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태극마크를 달아본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는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특히 지구촌 최고의 축제인 월드컵에서 뛰어본 선수라야 축구에서 인정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훌륭한 축구인도 많지만 많은 축구인과 팬도 이 전 부회장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느 정도의 ‘간판’은 있어야 된다는 인식인 셈이다.
지난해 갑자기 불거진 ‘거스 히딩크 감독 재영입 논란’도 이런 뿌리 깊은 ‘편견’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 히딩크 감독과 신 감독은 비교조차 하기 어렵다. 히딩크 감독은 PSV 에인트호번(네덜란드)과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등 프로팀에 이어 네덜란드와 한국, 호주, 러시아 사령탑까지 지냈다.
신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김호곤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도 내심 이런 불안감이 있었다. 신 감독이 지도자 경험이 적고 말이 앞선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진짜 좋은 코치를 찾았다”며 스페인 출신 토니 그란데 코치(71)와 하비에르 미냐노 피지컬 코치(51)를 발탁해 앉히고 ‘히딩크 논란’의 책임을 지고 떠났다. 실제로 그란데 코치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스페인 대표팀 수석코치로 프리메라리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유럽선수권대회, 월드컵 우승을 모두 경험한 백전노장이다. 한국은 두 코치가 합류한 뒤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를 2-1로 꺾었고 한 수 위라는 일본도 4-1로 대파했다. 두 코치가 보좌한 뒤 대표팀이 달라지면서 희망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 감독이 자신만의 카리스마를 다시 드러내는 순간 이런 분위기가 깨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과거 다소 독선적이고 성급한 판단으로 경기를 그르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신 감독이 두 코치를 영입한 뒤 보였던 팀워크를 끝까지 이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 그를 보는 팬들의 불안한 시선도 사라질 것이다. 성적이 좋으면 모든 공도 신 감독에게 돌아간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