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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만 들면 집안 후끈… 보일러 안 틀어요”

입력 | 2018-01-05 03:00:00

국내 첫 제로에너지 주택단지
서울 노원구 ‘EZ하우스’ 가보니




서울 노원구 EZ하우스는 전기나 난방연료가 많이 들지 않는 ‘제로 에너지 주택’이다. 외벽에는 자체적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는 태양열 전지판이 부착돼 있고(왼쪽), 지하에는 지열을 난방에 활용하는 지열 히트 펌프가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서울 기온이 영하 11도까지 떨어진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8시. 서울 노원구 ‘EZ하우스’에 사는 박애라 씨(36·여)가 현관문을 열자 훈훈한 온기가 ‘훅’ 하고 퍼져 나왔다. 박 씨는 “외출 후 돌아왔을 때 따로 보일러를 틀어놓지 않아도 실내 온도가 떨어지지 않아 집에 들어서면 후끈한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 여간해선 식지 않는 이런 온기가 그리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 한 달 전기료 6만8000원 단지

국토교통부가 서울시, 노원구, 명지대 산학협력단 등과 함께 지은 EZ하우스는 국내 최초 제로 에너지 주택단지로 건물이 소비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그동안 한 채씩 건립한 제로 에너지 주택은 많았지만 이를 단지로 조성한 건 EZ하우스가 처음이다. 공공 임대주택으로 운영돼 입주민 121가구 대부분이 행복주택 입주 요건을 갖춘 신혼부부나 고령층이다. 지난해 11월 20일 입주를 시작해 대부분 이사를 마쳤다. 지난해 12월 7일 오픈하우스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깜짝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입주민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20년 된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다 EZ하우스로 이사한 이동욱 씨(36)는 “20개월 된 아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 기저귀만 입혀놓을 때도 많다”고 말했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햇볕만으로도 실내가 데워져 보일러를 따로 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외풍이 적고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는다. 여름에는 블라인드를 쳐놓으면 외부 열기가 실내로 들어오지 않아 시원하게 지낼 수 있다.


이는 건축물의 단열 성능을 극대화하는 ‘패시브(passive) 설계’ 덕분이다. 특수 단열재와 3중 창틀을 이용해 내부 온기나 냉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했다. 그 결과 일반 건축물 대비 에너지 사용량을 61%까지 절약할 수 있다. 여기에 건물 외벽에 태양광 전지판을 배치하고 지하에는 지열을 난방에 활용하는 설비를 설치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기만으로 설비가 작동하는 만큼 가스 배관도 필요 없다.

김정현 노원구 주택사업과 팀장은 “태양광 발전에 유리한 낮이나 여름에 만든 잉여 전력을 주변 발전소로 보냈다가 이를 저녁이나 겨울에 끌어다 쓰기 때문에 1년 기준으로 건물이 난방, 냉방, 온수, 조명, 환기 등에 사용하는 에너지가 사실상 제로”라고 말했다.

입주민이 내는 에너지요금은 가전제품, 공용 엘리베이터, 주차장 차단기에 드는 전기요금 정도다. 그 덕에 요금이 일반 주택이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싸다. 입주 후 실내 온도를 20도 밑으로 내린 적이 없는 박 씨의 한 달 전기료는 6만8000원. 이전에 살던 다세대 주택의 가스비와 전기료를 합한 금액의 절반 수준이다. 김 팀장은 “한 달 전기요금이 2만4000원 나온 집도 있다”고 말했다.

○ 비싼 공사비가 대중화의 걸림돌


국토부는 EZ하우스처럼 외부 에너지 없이 살 수 있는 에너지 자립주택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올해 12월까지 전국에 제로 에너지 단독형 임대주택 298채를 준공할 계획이다. 공공건축물은 2020년, 아파트를 포함한 민간건축물은 2025년까지 제로 에너지 주택 건설을 의무화할 방침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중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첫 번째로는 비싼 공사비다. 제로 에너지 주택은 일반 건물보다 공사비가 30%가량 더 든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태양광 전지판이나 지열 난방기를 설치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여전히 만만치 않아 제로 에너지 건축이 의무화될 경우 분양가가 비싸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