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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한반도… 이순신의 리더십 절실”

입력 | 2018-01-05 03:00:00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제장명 교수




“우리의 국내외 정세를 볼 때 올해는 힘을 바탕으로 난국을 극복한 이순신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한 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4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에 임명된 제장명 전 해군사관학교 충무공연구부 교수(58·사진)는 “어렵게 중국(명나라)의 협조를 얻어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을 물리쳐야 했던 이순신의 상황은 현재의 북핵 위기의 한반도에 너무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충무공이순신’과 ‘이순신 백의종군’ 등 이순신과 관련한 7권의 책과 수십 편 논문을 발표한 국내 최고의 이순신 권위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당시 이순신은 지원군을 이끌고 온 명나라 진린(陳璘) 제독을 상대로 강온(强穩)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 조선 땅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려 했던 그의 협력을 이끌어냈다”고 소개했다.

진린은 소문대로 성격이 흉포했다. 조선의 대신들이 그의 비위를 거슬러 온갖 수모를 당했다. 조정은 이순신이 그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이순신은 배로 몇 십리 나가 진린을 맞았다. 푸짐한 연회를 열어 융숭히 대접했다. 왜적의 수급 수십 개를 건넸다. 오자마자 첫 승리를 거뒀다고 명의 황제에게 보고하라는 선물이었다.

제 소장은 “이순신은 진린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조선 수군 지휘관으로서의 자존심을 결코 잃지 않았다. 조선 수군의 강한 전력과 자신의 전략 전술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우리에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 힘이 있다’는 점을 알려 협력을 유도했다. 진린은 리더로서의 이순신에게 감동했다. 결국 명의 군대가 이순신의 전략 전술을 따라 조선을 돕도록 적극 독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순신이 명의 지원을 받아 왜군을 대패시킴으로써 일본은 그 후 300년 동안 조선을 넘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올해는 그 정유재란이 막을 내리고 이순신이 마지막 해전에서 전사한 지 7주갑(420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따라 올해 전국적으로 이순신 순국을 기리는 행사들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제 소장은 “이순신연구소는 올해 장군의 순국 의미를 되새기고 아직 정립되지 못한 사실(史實)을 바로잡을 생각”이라며 “현재 이순신의 해전 횟수와 명량해전의 장소,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 전세 등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갈린다”고 소개했다.

그는 “해전은 23전 23승이 정설처럼 돼 있으나 실제로는 50전 이상이라는 것이 최근의 연구결과이며 명량해전 장소는 기존의 진도대교 밑 울돌목설과 그 상류의 전라우수영 앞바다설, 우수영 상류 넓은 해역설 등 3가지로 갈리나 개인적으로는 넒은 해역설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제 소장은 “이순신의 위인의 면모를 강조하다 보니 당시 조선 수군은 항상 확연한 열세로 일본군과 싸워 이긴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며 “이순신은 미리 치밀하게 준비함으로써 왜군에 비해 오히려 월등하거나 최소한 대등한 상황을 만들어 전투를 시작했는데 이 점은 우리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가장 깊이 되새겨야 할 부분”이라고 제안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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