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급물살]정부 ‘9일 판문점 회담’ 제안
평창슬로건 앞에서 대화 제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에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을 제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평창 겨울올림픽·패럴림픽 슬로건인 ‘하나 된 열정, 하나 된 대한민국’이 보인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하지만 정부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가 나온 지 ‘6시간 만에 환영 표명’에 이어 ‘28시간 만에 회담 역제의’한 것을 지켜본 북한이 우리 생각만큼 속도감 있게 회담 제안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반응을 지켜보며 특유의 지연술로 몸값을 잔뜩 높이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남측 “‘회담 대표의 급’도 양보할 수 있다”
통일부가 공동경비구역(JSA)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을 회담 장소로 제안한 가운데 북측이 장소 변경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1월 13일 북한 병사 오청성 씨(25)가 판문점 인근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한 뒤 북한은 현장에 탈북 방지용 참호를 깊게 파고 나무를 심는 등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에 북한이 개성공단을 회담 장소로 역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대북 제재로 경제 사정이 악화된 북한이 남북 회담을 계기로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환기하려 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개성공단을 다시 여는 데 미국 등 국제사회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건 여전히 부담이다.
회담 대표로 누가 나설지도 관심이다. 장관급 회담으로 결정되면 북한 군부 내 대표적 대남통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북측 대표로 참가할 가능성이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우리는 김영철을 원하지만 북한에서는 ‘총리급’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가능성이 낮다. 그래서 리선권이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남북은 정부 직급 체계가 다르기에 ‘급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금 장관급이니 차관급이니, 급을 맞추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급 갖고 따지는 것은 회담하기 싫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 9일 전날은 김정은 생일, 회담 며칠 늦춰질 수도
북한이 회담 참가에 대한 답을 미루며 지연술을 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우리는 마감 시한(평창 올림픽 개막)이 정해져 있지만 북한은 급할 게 없다. 최대한 늦게 (참가를) 확정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같은 북한의 속내까지 감안해 회담을 바로 코앞인 9일로 제안했다는 말도 있다. 북한이 한두 차례 미룰 명분을 주겠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신년사를 한 뒤 내부 총화를 하는 기간도 있어 ‘시간을 줘야 한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그에 따라 일주일 정도 말미를 줬을 뿐 어떤 특별한 정무적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 안팎에서도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시무식에서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오랜만에 열릴 것으로 보이지만 만만치 않은 대화가 될 것”이라며 “북한은 또 다른 대접을 요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