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말할 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왜 이렇게 기억이 다른 걸까? 우리의 기억은 원래 주관적이다. 같은 사건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한다. 한 연구자는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했다. 싸움 상황을 연출한 후, 10명에게 그 상황을 지켜보도록 했다. 어느 방향에서나 똑같이 볼 수 있도록 했으나, 싸움이 끝난 후 10명이 전한 이야기는 모두 달랐다. 기억이 이렇듯 사람마다 다른 것은, 인지기능이지만 정서와 매우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의 정서적 반응에 따라 기억이 나기도 하고 안 나기도 한다. 일부러 잊어버리기도 하고, 무의식 속에 묻히기도 한다. 종종 왜곡과 변형도 일어난다.
부모가 공부를 안 하는 아이에게 “너 이렇게 해서 대학에 가겠니?”라고 말을 했다. 아이가 이 말에 굉장히 기분이 상했다면, 그 말은 “이따위로 해서 대학이나 갈 수 있겠니?”로 기억될 수 있다. 가끔은 부모가 전혀 하지 않은 말도 한 것처럼 기억되기도 한다. 평소 아이에게 “쯧쯧… 네가 할 줄 아는 것이 뭐가 있니?”라는 말을 많이 했다면, 아이는 부모의 “쯧쯧”이라는 말 한마디로, 그 말을 할 때 부모가 주로 짓는 표정만으로도 그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하기도 한다.
자식은 서러웠다고 하는데, 부모는 그 기억이 전혀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부모는 그 말과 행동을 한 자신의 본심만 기억한다. 대부분 자식 잘되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본심보다 그 표현방식을 강렬하게 기억한다. 그 지점에서 두 사람의 기억은 또 달라진다.
고3 아이가 공부를 안 하고 있다. 엄마가 “평소에 열심히 하는 거 잘 아는데, 이상하게 고3 엄마들은 애들이 책상에서 멀어져 있으면 불안하고 걱정되더라”라고 말하는 부모의 태도와 “야! 좀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니? 네가 그럴 때니?”라고 말하는 부모의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아이는 부모의 태도에 마음이 많이 상해버린다. 그런데 두 말의 의도는 같다. 엄마는 후자처럼 말해놓고 전자처럼 말했다고 착각한다.
부모가 매번 이런 식이면 아이는 마음에 상처가 깊어져 부모에 대한 분노가 생긴다. ‘왜 나를 못 믿어줄까’ 하는 생각은 해결하지 못한 갈등요소나 취약성이 된다. 이것에 의해서 사건이나 상황은 왜곡 해석이 되기 시작한다. 아이의 기억에 부모의 말투는 더 심하게 왜곡되고, 부모의 의도 또한 여간해서 좋게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고작 그런 걸로 상처를 받느냐고 되묻는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던 출발은 좋은 의도였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다. 하지만 의도가 좋다고 해서 모든 말과 행동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한테 어떤 영향이 가든 상관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의도라면 받는 사람도 그렇게 느끼도록 충분히 좋게 말해야 한다. 편안한 상황에서 좋게 말해야 아이가 부모의 깊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