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정부와 다수의 불교도들에게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에서 넘어온 불법이민자들이지 인종적, 정치적 실체를 인정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었다. 교황은 미얀마 정부와 군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인종청소에 대한 우려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그가 ‘로힝야’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실망의 목소리를 냈지만 현명하고 실리적인 결정이었다.
그는 미얀마 방문을 마치고 방글라데시로 가서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16명의 로힝야 난민을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누군가로부터 교황을 만나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인사만 하고 바로 나가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사람들은 난민들을 빨리 내보내려고 서둘고 있었다. 교황은 그런 식의 연출에 화가 나 호통을 쳤다.
그는 세상을 향해 말했다. ‘마음을 닫지 맙시다. 얼굴을 돌리지 맙시다. 하느님의 현존은 오늘, 로힝야라고도 불립니다.’ 예정에 없던 즉흥적인 말이었다. 그는 ‘로힝야’라는 말을 입에 올림으로써 그때까지 충실히 따랐던 대본을 더 이상 따르지 않았다. 이슬람 난민들의 비참한 얼굴은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게 인간을 빚은 신의 형상이고 현존이었다. 그 순간, 그가 따른 것은 대본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이었다. 진짜 대본은 예수였던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로힝야’들한테 한없이 따뜻했던 예수, 며칠 후면 그가 태어난 날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