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 산업부장
지난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근로시간 단축 개정안이 무산된 직후 전화로 들어본 중소기업인들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현재 기업 상황을 알기나 하는 건지, 알고도 그런 건지 이해할 수 없어 했다. 대형마트를 통해 통조림 등을 판매하는 한 중견 식품기업. 이제 자사 제품은 동네 슈퍼로 밀려날 것이라고 푸념했다. 인건비 등 원가가 오르면 최저 마진 확보가 어려워지고, 판촉 행사 위축으로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자동화 설비를 들이려 해도 자금력이 문제다. 통장 잔액이 넉넉한 시장 지배적 기업의 입지만 공고해져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 딱한 것은 근로자다. 기업들은 매출과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약간의 무리가 있더라도 야간과 주말에도 공장을 돌려왔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오르고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작은 기업일수록 야근이나 특근을 없앨 수밖에 없다. 월 200만 원 받는 근로자는 야근을 하며 추가로 받는 100만 원으로 저축도 하고 자녀 학비도 대 온 것이 현실인데, 이 돈이 사라지는 것이다.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근무하는 파트타임 인건비는 올라가지 않느냐고? 파트타임을 아예 안 쓰겠다거나 줄이겠다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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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준금리가 인상됐다. 설비 도입이든 운영 자금이든 빚 없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충격이 상당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만성 소비부진도 이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오죽하면 문 닫고 도망가고 싶다는 말까지 나올까. 한 수제화 업체 대표는 “열심히 일하면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중소기업을 우리 경제 중심에 두겠다’는 대통령 공언과 달리 작은 기업일수록, 취약 근로자일수록 극한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더 갑갑한 것은 이런 사정을 말하기도 어려운 ‘불통’의 분위기다. 한 기업인은 인터넷 댓글 부대를 의식한 듯 잘못 걸리면 죽는 세상이라며 익명을 요구했다. 진위를 떠나 기업인들이 그렇게 느낀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사회 분위기다. 정부와 정치권은 더 늦기 전에 말 따로, 행동 따로 기업 정책을 돌아봐야 한다. 업종 특성을 감안해 연간 탄력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 운영에도 신축성을 둬야 한다. 노동계에 영합하는 ‘노퓰리즘’에 기업들의 생사를 통째로 넘길 순 없지 않은가.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