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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세습된 富가 21세기 정치경제를 지배한다”

입력 | 2017-12-02 03:00:00

◇애프터 피케티/토마 피케티 외 25인 지음/유앤제이 옮김/780쪽·3만8000원·율리시즈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을 통해 ‘r(자본수익률)〉g(경제성장률)’라는 부등식을 널리 알렸다. 그러나 피케티는 이번 책에서 “모형의 사용은 절제돼야 하고 그 역할을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며 “약점 많은 ‘21세기 자본’을 뛰어넘는 것이 지금의 과제”라고 밝혔다. 율리시즈 제공

화려한 책이다. 저자 중 4인(폴 크루그먼, 마이클 스펜스, 로버트 솔로, 로라 타이슨)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다. 다른 저자들도 경제학, 법학, 역사학, 지리학 분야의 내로라하는 석학들이다.

4년 전 출간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46)의 책 ‘21세기 자본’에 대한 이들의 비평을 묶고 말미에 피케티의 답문을 실었다. 글쓴이에 따라 찬사와 비판이 엇갈린다. 피케티는 겸허한 태도로 비판 내용을 수용하며 이렇게 썼다. “학문 간의 소모적 대립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각 학문의 기법을 결합해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고 그 수용 가능성을 살피는 것이다. 방법론적 관점이 매우 상이한 전문가들의 글을 모은 이 책은 그런 접근방식을 충실히 보여주는 예다.”

‘21세기 자본’ 영문판을 펴낸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는 ‘운이 좋으면 1, 2만 권쯤 판매될 책’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판매량은 그 100배를 넘었다. 이 출판부의 102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판매돼 수요를 맞추느라 인도와 영국의 인쇄소가 동원됐다. ‘21세기 자본’은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돼 최근까지 약 220만 권이 판매됐다.

피케티는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규합해 그 소유권이나 수익을 노리는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 하는 문화, 경제, 정치적 고정관념이 21세기 정치경제학을 지배할 것”으로 확신했다. 이번 책의 서문을 쓴 학자들은 “2년 전 우리는 그의 말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고 여겼지만 지난해 미국 대선 이후 피케티의 그 확신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세습된 부(富)가 정치적 방향성을 만들고 경제 구조를 형성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피케티의 주장이었다. 이 책은 첫머리에서 그의 주장이 옳으며, 불평등의 심화를 제어하기 위해 경각심을 갖고 당장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상속돼 정착된 부는 경제 성장을 추진하는 창조적 파괴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금권주의자들이 강한 목소리를 내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시민이 아닌 금권주의자의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게 된다. 시장의 선택권을 쥔 금권주의자들은 그들이 열고 들어온 문을 닫아버리고 싶어 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지식보다 인맥이 삶의 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J 브래드퍼드 들롱)

비판적 태도를 취한 저자들도 피케티가 현상을 분석한 시각의 방향성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들은 각자의 연구 자료를 근거 삼아 피케티의 개념 사용이나 원인 고찰이 지닌 허점을 지적했다. 가장 우호적인 필자인 크루그먼도 “피케티의 자본 분석에는 엄밀함이 결여돼 있다”고 썼다. 피케티는 자신의 분석이 서구 사회에 편향됐으며 사회 규범과 부의 소유형태 변화 등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음을 시인하고 “내 책은 21세기 자본 연구의 입문서일 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경제적 합리성은 불평등의 영속을 용인하며 결코 민주적 합리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피케티의 주장이 틀리지 않음은 지금 세계가 처한 현실이 보여주고 있다. 한때 ‘편협한 마르크스주의자’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지만 결국 그는 불평등에 대한 논의의 장에 오랜 세월 드리워졌던 암묵적 터부를 치워냈다. 피케티의 통찰은 ‘원인과 결과가 불분명한 사회경제적 전환기’를 경제학에 의지해 살피는 길로 수많은 독자를 끌어들였다. 이 책은 그 길의 두 번째 안내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