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 화산은 1963년 분출 때 화산폭발지수(VEI·Volcanic Explosivity Index) 5를 기록했다. VEI는 화산 크기와 상관없이 분출할 때 폭발력을 측정하는 수치로 화산재나 가스, 용암 등 분출 때 나오는 물질의 총량과 화산재가 분출되는 높이 등을 고려해 판단한다. VEI 5의 경우 분출물 부피는 1∼10km³로 1만 년 동안 약 80회만 발생했을 정도로 분출량이 많은 편에 속한다. 1963년 당시 아궁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태양을 가려 지구 평균 기온이 한동안 0.1∼0.4도나 낮아졌다.
우기로 접어든 인도네시아의 날씨가 피해를 키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화산 분출물이 물과 섞이면 점도가 낮아지면서 속도가 빨라지는 화산이류가 발생한다. 초속 수십 m나 되는 속도로 경사면을 따라 내려오기 때문에 미리 대피하지 않는다면 피하기가 불가능하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분출했을 때 초기에는 인명 피해가 거의 없었지만 비온 뒤 화산이류가 생기면서 841명이 사망했다.
화산의 상징과 같은 용암 분출을 많이 걱정하지만 용암은 사실상 인명 피해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 수백 도가 넘는 온도지만 이동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지진이 발생하거나 화산재가 분출할 때 미리 대피만 하면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아궁 화산 지하에 있는 마그마는 안산암질이다. 온도가 낮고 점성이 높아 지표면으로 흘러나온다고 해도 빠르게 식으면서 이동 속도는 더 느려진다. 1963년 분출 때도 용암 분출이 있었는데, 이때 20일 동안 7km 이동했다.
화산 분출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이려면 대피 반경을 예상보다 넓게 잡는 것도 중요하다. 1980년 VEI 5등급으로 분출한 미국 세인트헬렌스 화산은 마그마가 분화구 정상에서 분출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사람들을 대피시켰는데, 예상과 달리 산의 옆구리에서 분출하면서 인명 피해를 냈다.
오가희 동아사이언스 기자 sol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