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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조수진]신화로 남은 ‘포켓 헤라클레스’

입력 | 2017-11-21 03:00:00


동서양의 고전에는 괴력의 사내들이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는 몽둥이로 사자를 때려죽이고, ‘수호지’의 무송은 한 손으로 호랑이의 머리털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머리를 가격해 죽게 한다. 현대인은 사방 4m 경기장 위에서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바벨의 중량으로 세계 최고의 장사를 가려낸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역도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대한민국’을 내걸고 딴 올림픽 첫 메달이 역도(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나왔다. 장미란은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2012년 런던 올림픽을 4위로 마치면서 바벨을 어루만진 손을 입에 가져다대며 작별을 고했다. 문인수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했다.

▷한때 세계 최강의 역도 강국은 불가리아였다. 1996년 이전 올림픽에서 쓸어 담은 메달만 34개였다. 그러나 1984년 터키계에 박해를 가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1982년 열다섯의 나이로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나임 쉴레이마노을루가 ‘창씨개명’을 피해 1986년 전지훈련 도중 터키로 망명했다. 터키 정부가 보낸 전용기로 터키 땅을 밟은 쉴레이마노을루는 곧장 땅에 엎드려 입맞춤했다. 이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필두로 올림픽 첫 3연패를 비롯해 세계선수권 7연패, 세계기록 46회 경신 등 대기록을 새 조국 터키에 안겼다. 그의 뒤를 이어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하릴 무틀루 역시 1989년 불가리아에서 터키로 망명한 선수다.

▷서울 올림픽 때 60kg급에 출전한 쉴레이마노을루는 용상에서 몸무게의 3.18배인 190kg을 들어올려 ‘인간은 자신의 몸무게 3배를 넘게 들 수 없다’는 통념을 깼다. 인상에서도 최초로 몸무게 2.5배(152.5kg)를 넘게 들어올렸다. 키 147cm, 곱상한 외모의 21세 청년에겐 ‘포켓 헤라클레스’란 수식어가 붙었다. 2000년 은퇴 이후 여러 차례 총선에 도전했지만 정치는 역도와 달랐다. 이런 그가 18일 간부전으로 50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세기의 역사(力士)가 역사(歷史) 속으로 사라졌다.

조수진 논설위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