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세일러 ‘노벨 경제학상 효과’ 톡톡… 출간 10년 ‘넛지’ 베스트셀러 재등극
세일러 교수가 생각하는 사람은 ‘천재인 동시에 바보’다. 직관적이고 통제하기 어려운 ‘행동하는 자아’와 숙고하고 의지력이 있는 ‘계획하는 자아’의 영향을 동시에 받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빨간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넣는 건 ‘행동하는 자아’의 소비 일탈을 차단하기 위한 ‘계획하는 자아’의 통제력이 발휘된 사례다.
그래서 똑똑한 선택으로 이끄는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유연하며 비강제적인 ‘자유주의적 개입’인 ‘넛지(nudge)’를 대안으로 제시해 일체의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설득한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거나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뜻으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말한다.
출간된 지 10년이 다 돼가는 이 책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 발표 이후 베스트셀러로 재등극했다. 뉴욕타임스 논픽션 페이퍼백 부문에서 지난주까지 5주 연속 5위 안에 들었고, 한국에서도 판매량이 급증했다. 그동안 손놓고 있다가 떠들썩한 노벨상 수상 소식에 너도나도 이 책을 집어 드는 건 사람들이 얼마나 ‘사람다운’지 보여준다. 굳이 말하자면 최근 접한 소식에 큰 영향을 받는 ‘가용성(availability) 편향’이다.
노벨상 수상 이후 넛지에 대한 재해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 등과 같은 부정적 선택에 넛지가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쁜 쪽 선택을 유도하는 ‘슬러지(Sludge)’나 원한이나 나쁜 감정을 품게 만드는 ‘그러지(Grudge)’와 같은 부작용이다.
모든 것을 다해 줄 것처럼 떠드는 포퓰리즘 시대에 자유주의적 개입주의의 의미를 짚어보고 한계와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게 세일러 교수를 선택한 노벨상위원회의 넛지는 아닐는지.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