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 뉴욕 특파원
플래너건은 마라토너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모태 마라토너’다. 4세 때부터 달리기 대회에 나간 그는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타고난 승부사다. 올봄 피로골절로 쉰 것을 빼고는 7년간 휴가 한 번 가지 않은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하지만 유독 큰 대회와 인연이 없었다. 그런 그가 30대 중반에 메이저대회인 뉴욕 마라톤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자 그의 부모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지나온 길은 결과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2016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 마라톤 미국 대표 선발전. 플래너건은 골인 지점을 몇 마일 남기고 다리가 풀려버렸다. 기진맥진해 뒤처진 그에게 기적처럼 수호천사가 나타났다.
미국 언론은 동료이자 경쟁자를 따뜻하게 보듬어준 두 여성 마라토너의 우정 속에서 플래너건의 ‘팀맘(Team Mom)’ 리더십을 주목했다. 크래그는 원래 플래너건이 만든 여성 마라톤클럽에서 함께 훈련하던 후배. 같이 땀을 흘리며 대회를 준비한 이들은 경기장에서 순위 싸움을 벌이는 순간에도 서로 밀고 끌어주며 꿈을 향해 함께 달려간 것이다. 크래그 외에도 플래너건과 함께 연습한 11명의 여성 마라토너들은 모두 올림픽에 출전했고, 플래너건도 그들과 함께 운동하며 뉴욕 마라톤 정상까지 올랐다. 플래너건은 “다른 여성들과 함께 운동하며 더 나은 선수, 사람이 됐다. 달리기와 훈련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플래너건의 더 큰 업적은 그녀가 재능이 있는 주변의 여성들을 키워주고 도와준 것”이라며 이를 ‘셜레인 효과(Shalane Effect)’로 표현했다. 마라토너 로런 플레시먼은 “셜레인은 최고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지 않겠다는 믿음을 갖고 젊은 후배들을 이끄는 ‘팀 맘’이라는 새 브랜드를 개척했다”고 말했다.
“우린 목표를 향해 수천 마일을 함께 달렸어요. 그녀는 나와 함께하며 땀을 흘렸습니다. 우리 모두에겐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셜레인과 같은 사람이 있죠. 그가 우리를 챙겨줬듯이 우리도 똑같이 그렇게 할 겁니다.”(에이미 크래그)
경쟁자를 가차 없이 찍어 누르거나 집단 속에 숨어 숨죽이고 살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플래너건의 42.195km가 이를 보여준다. 이왕 달릴 거라면 플래너건처럼 해보면 어떨까. 누군가와 함께 정상에 오르면 외롭지도 않을 테니까.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