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식탁 바꿀 ‘크리스퍼’ 기술
특정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자르거나 붙이는 유전자 편집기술 ‘크리스퍼’의 활용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기술 개발 초기에는 작물의 수확량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최근엔 소비자 기호에 맞춘 개량 작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이언스 제공
와인의 기본적 풍미는 포도가 결정한다. 여기에 포도의 당분을 알코올로 바꿔주는 미생물인 효모가 발효되며 내놓는 휘발성화합물(향기)이 얹어져 고유의 향을 이룬다.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와인의 풍미가 달라지는 건 효모의 상태가 달라서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광고 로드중
요한 테벨레인 VIB 연구원은 “우디향(네롤리돌), 과일향(에틸 아세테이트) 등을 만드는 효모의 유전자도 밝혀진 만큼 유전자 편집으로 특정 풍미를 증가시킨 맞춤형 와인 제작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엠바이오’ 8일자에 실렸다.
김 단장은 “크리스퍼 등장 초기엔 가뭄, 병충해 등에 강한 품종으로 개량해 수확량을 높이는 연구에 관심이 집중됐다면 최근엔 사용자의 기호에 맞춘 신품종을 개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품종 개량 분야에서 크리스퍼는 후발주자다. 익히 알려진 유전자변형(GM) 기술은 이미 상용화된 식품을 식탁에 올리고 있으며, 한참 선배인 전통 육종 기술의 시작은 약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간다.
광고 로드중
대안으로 떠오른 GM 기술은 개량에 필요한 유전자를 선별해 박테리아와 결합한 뒤 개량하고자 하는 개체에 삽입하는 과정이다. 쉽게 말해서 크고 단 토마토를 만들기 위해 전통 육종은 큰 토마토와 단 토마토를 반복 교배시키며 원하는 품종이 선별되길 기다리고, GM 기술은 큰 토마토의 유전자를 빼와 단 토마토에 조합시키는 방식으로 품종을 개량한다.
크리스퍼와 GM 기술의 차이는 외부 유전자의 삽입 여부다. 크리스퍼는 외부 유전자를 도입할 필요 없이 이미 내부에 존재하는 유전자를 자르고 이어 붙여 새로운 형질을 만든다. 큰 토마토에서 단맛을 내지 못하게 만드는 유전자를 잘라내 단맛을 내도록 개량해 주는 것이다. 원하는 유전자를 직접 넣는 GM 기술보다 성공률은 낮지만, 외부 유전자가 삽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술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강병철 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 교수는 “각 개량 기술마다 장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에 미래 식탁을 꾸리는 일에 어떤 기술이 승자가 될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