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시즌2]<16> 보행자 위협하는 교차로시설
▲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교통섬과 인도 사이 횡단보도를 차량 한 대가 지나가고 있다. 한 보행자는 아직 횡단보도를 채 건너지도 않았고 다른 보행자들은 기다리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교통섬은 교차로에서 흔히 보이는 교통안전시설이다. 보행자가 여기서 신호를 기다린다. 교통섬과 인도 사이는 명백한 횡단보도다. 그런데 현실에선 횡단보도 대우를 받지 못한다. 보행자보다 차량이 우선이다.
○ 보행자 위협하는 교통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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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1시경 을지로입구역 7, 8번 출구 앞. 약 1시간 동안 어떤 차량도 교통섬과 보도 사이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보도에 사람이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살배기 아들이 탄 유모차를 밀던 김하영 씨(31·여)는 우회전 차로를 쳐다만 봤다. 김 씨는 “결국 보행자가 목숨 걸고 차량 행렬을 뚫고 건너야 한다”고 말했다.
교통섬은 1988년부터 교통체계 개선 명목으로 설치됐다. 그러나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지난해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보행자의 안전 확보를 위한 신호교차로 개선방안’에 따르면 세계 주요 대도시 간선도로를 비교한 결과 서울은 교차로 한 곳당 교통섬이 2.6개가 있다. 도쿄(1.3개)나 런던(1.2개)의 2배다.
김원호 서울연구원 교통시스템연구실장은 “연구 결과 교통섬은 보행자 통행량이 시간당 800명 이하, 우회전 교통량이 시간당 260대 이상일 때만 효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교통섬이 필요한 교차로도 보행자 안전을 위한 설치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빨간불 우회전은 불법? 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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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보행자 보호 장치를 여럿 마련해 놓았다. 어린이보호구역이나 사고 발생 구역은 예외적으로 빨간불에도 우회전을 금지한다. 우회전 전용 신호등도 설치한다. 무엇보다 우회전이 가능한 곳도 횡단보도 앞에서는 사람이 있든 없든 무조건 차량이 멈춰야 한다.
한국은 적신호 우회전 상황에서 일시정지 의무가 없다. 관련된 도로교통법 규정도 애매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우회전 때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정지하고, 보행자가 없거나 충분히 지나간 후엔 통과해도 단속되지 않는다. 반면 2011년 대법원은 보행신호에서 차량 우회전은 불법이라고 판시했다.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우회전 사고가 났을 때 적용하는 법규도 중과실인 신호 위반과 일반과실에 속하는 안전운전 의무 위반 등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라며 “적신호 때는 우회전 금지라는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일단 우회전 후 횡단보도에서는 무조건 일시정지 하도록 도로교통법을 고치고 우회전 때 운전자 시야를 가리는 교통시설물도 점차 옮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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