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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의심을 푸는 방법

입력 | 2017-11-07 03:00:00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어떤 사람이 아무 근거도 없이 나를 의심한다면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을 때도 있다. 왜냐하면 변명에 급급하다 보면 그 의심이 더욱 심해질 텐데, 가만히 놔두면 뒤에 가서 저절로 의혹이 해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려 말 학자 가정 이곡(稼亭 李穀·1298∼1351) 선생의 ‘가정집(稼亭集)’ 제1권에 실린 ‘의심을 풀다(釋疑)’라는 글입니다. 터무니없는 의심을 받고는 억울하다고 펄펄 뛰다가 오히려 더 의심을 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일단은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생은 한(漢)나라의 직불의(直不疑)를 예로 듭니다. 직불의는 같은 방 동료가 다른 사람의 금을 자기 금으로 착각해 고향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바람에 금을 잃어버린 사람으로부터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직불의는 아무 변명도 않고 금을 사서 보상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고향에서 돌아온 사람이 자신의 착오를 사과하면서 금을 돌려주자 의심하였던 사람이 크게 부끄러워했답니다. 선생은 이 상황에 처한 직불의의 마음을 헤아려 보십니다.



남이 나를 의심하는 것은 평소 나의 행동이 남에게 신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도 마음속으로 분개하고 큰소리로 다투면서 관가에 재판을 청하고 신명(神明)에게 질정(質定)하여 기필코 해명하고 난 뒤에야 그칠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외면으로는 터무니없는 누명을 뒤집어쓰더라도 내면으로는 참다운 덕을 닦아야 할 것이니, 그 덕이 안에 쌓여 밖으로 드러나면 사람들이 모두 심복하게 될 것이다(吾寧外受虛名而內修實德, 積而發之而人皆心服焉). 그렇게 되면 실제로 도둑질을 했다 하더라도 오늘날의 아름다운 행실이 지난날의 과오를 덮어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하물며 그런 일이 없는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의심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선생의 결론입니다. ‘참으로 스스로 돌아보아 신실(信實)하기만 하다면 천지와 귀신도 나를 믿어 줄 텐데, 사람들에 대해서야 어찌 염려하겠는가(苟自反而信之, 天地鬼神將信之, 吾於人, 何慮之爲).’ 그나저나 직불의는 다행히 사실이 규명되어 의심을 풀었다지만 그렇지 못한 억울한 사람들은 과연 어찌하는 것이 좋을지.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