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잘 알다마다요. 국제대회에서 항상 봅니다. 가족 얘기에 농담도 하고…. 우리가 장비 등 여러모로 지원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뿐이 아닙니다. 용돈으로 쓰라고 몇백 달러씩 돈도 건네는걸요. 이번에도 줬어요.”
북한 선수단을 처음 취재했던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서 겪었던 일이다. ‘표정 관리의 대가’라는 생각과 함께 2003년 8월 TV를 통해 봤던 북한 응원단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시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이 “장군님(김정일) 사진이 거리에 방치돼 있다. 비라도 맞으면 불경”이라며 사진이 박힌 플래카드를 떼어내며 항의하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미녀 응원단’으로 불리며 가는 곳마다 큰 관심을 받았던 그들의 우는 얼굴이 과연 진짜일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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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 개막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북한은 아직 참가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자력으로 출전권을 확보한 종목이 있기 때문에 결심만 하면 출전에는 문제가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적극적이다. 북한이 참가하면 장비를 포함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마지막까지 북한을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고대부터 올림픽에는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무기를 내려놓다’는 그리스어)로 불리던 올림픽 휴전이 있었다. 핵으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참가는 평화를 으뜸으로 치는 올림픽 정신에도 부합한다. 평창에 온다면 올림픽 흥행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여러모로 볼 때 북한의 참가는 환영할 일이다. 다만 이를 볼모로 잡혀 상식에서 벗어날 정도로 휘둘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북한은 스포츠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결정할 것이다. 4년 동안 올림픽을 기다려온 선수들이 있는데도 올지 말지를 저울질한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두 얼굴이 되는 게 북한이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