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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길진균]당료? 관료? 당비 내는 공무원

입력 | 2017-10-31 03:00:00


길진균 정치부 차장

최근 사석에서 몇몇 친분이 있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만났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이슈가 화제에 올랐다. 인사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번에 자유한국당으로 파견 나갔던 공무원들은 안됐어. A 국장은 승진은커녕 본부로 가지도 못하고 지방으로 갔더라. 그래서 정권 말에는 당으로 가면 안 되는 건데….”

다른 이도 거들었다. “그걸 누가 몰라? 그래도 다행히 3년 넘게 당에 있던 B 국장은 이번에 1급으로 승진했잖아. 그나저나 이번엔 누가 간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올 3월. 한국당 안에선 드러나지 않은 인사(人事)가 있었다. 중앙부처 공무원 출신 당 수석전문위원 15명이 사임하고 조용히 당을 떠났다. 이들 대다수는 친정인 원 소속 부처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각 부처에서는 새로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으로 보낼 공무원 선발 작업이 한창이다.

여당 정책위에는 15명 안팎의 국장급 공무원, 즉 경험이 많은 관료들이 맡는 자리가 있다. 당과 정부의 정책 조율 및 가교 역할을 맡고 있는 당 수석전문위원들이다. 이들은 정치 논리에 치우치기 쉬운 정당 정책을 보완하거나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한다. 정부는 이들을 통해 당의 의사나 기류를 원활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당 전문위원들은 1, 2년간 당에 봉사한 뒤 특채 형식으로 친정으로 복귀하는 것이 사실상 보장된다. 진급도 뒤따른다. 2급 국장급 인사가 집권당을 거쳐 1급 차관보 또는 실장급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 통례다.

하지만 잃는 것도 있다. 친정을 떠난다는 부담에다 연봉은 30%가량 삭감된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열악한 정당은 이들이 정부에서 받던 연봉을 그대로 줄 여력이 없다. 민주당은 국장급 당료가 받는 7000만 원 안팎의 연봉을 이들에게 지급한다. 그래도 집권당의 실세 정치인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회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까지 올랐던 변양균 씨도 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을 거쳤다. 그래서 정권 초반이나 집권당의 정권 재창출이 유력할 때는 각 부처 엘리트들이 앞다퉈 당 전문위원이 되기 위해 경합을 벌이기도 한다.

여당은 여당대로 중앙당 당직자 수를 최대 100명으로 제한하고 있는 정당법을 근거로 내밀며 관료에게 내준 15명 안팎의 국장급 당료 자리를 각 부처나 정부기관에서 마련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여당 당료들은 행정부 경험을 쌓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정당 근무는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당 수석전문위원은 정부에 사직서를 내고, 입당 절차를 거쳐 고위 당직을 받은 정식 당원이다. 매달 5만 원 상당의 당비도 낸다. 월급 또한 당의 재정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당과 정부가 이들을 애써 ‘당직자’가 아닌 ‘파견 공무원’으로 부르고 1, 2년 뒤 친정으로 복귀시키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다.

예전 자료를 뒤져봤지만 언제부터 어떻게 이 제도가 시행됐는지 찾기가 어려웠다.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 총재 시절이던 1988년 국회에서 “집권당에만 공무원을 파견해 특정 정당에 봉사하게 하는 것은 3권 분립 정신에 위배된다. 정부는 야당에도 공무원을 보내줘야 한다”고 지적한 것으로 미뤄볼 때 군사정권 때도 존재했던 것 같다.

‘관료 전문위원제’의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헌법이 규정한 3권 분립과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라는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꼭 필요한 제도라면 관행으로 이어갈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공론화를 거쳐 시스템으로 안착시키는 것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