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전쟁술/알렉시 제니 지음·유치정 옮김/804쪽·2만3000원·문학과지성사
의사의 진단서를 위조하고, 폭설로 고립된 지역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며 회사를 결근하던 ‘나’는 결국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1991년 TV가 프랑스군의 걸프전 참전을 알리지만 ‘요정 나라의 불꽃같은 초록빛 포탄’을 중계할 뿐이다. “그것은 살인자의 손에 어떤 얼룩도 남기지 않은 깨끗한 전쟁이었다.”
이 장편소설의 서두는 1991년 ‘걸프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를 쓴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현대사회는 가상과 실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고 했다. 소설은 TV가 중계하는 이미지 뒤편에 실재하는 전쟁의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우연히 알게 된 노인 살라뇽의 그림에 마음을 빼앗긴다. 살라뇽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고, 인도차이나전쟁(프랑스가 옛 식민지이던 인도차이나반도의 나라들을 다시 지배하려고 일으킨 전쟁)과 알제리전쟁(프랑스가 독립하려는 알제리와 벌인 전쟁)에도 참전했다. 그리고 전쟁을 그림으로 그렸다. 살라뇽은 ‘나’에게 그림을 가르쳐 주고, ‘나’는 살라뇽의 노트를 토대로 그의 일생을 정리한다.
소설은 프랑스군이 저지른 야만적 행위를 신랄하게 고발한다. 평범한 고교 생물교사이던 저자는 이 소설로 2011년 세계 3대 문학상의 하나로 꼽히는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았다.
“우리 중 거의 대부분은, 무수히 많은 다른 사람이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오염물질의 결과처럼, 사막의 확장처럼, 채무의 지불처럼 더운 나라에 사는 이름 없는 다른 사람들이 그 책임을 감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