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선포’ 120주년, 학계 핫 이슈로
3년 전 복원을 마친 서울 덕수궁 석조전을 배경으로 지난해 5월 조명을 이용한 미디어 파사드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대한제국은 무능해서 자력으로 근대화할 수 없는 나라였다는 인식은 일제가 국제사회를 상대로 퍼뜨린 왜곡에서 비롯됐다.”(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최근 문화재청 산하 국립고궁박물관이 주최한 ‘대한제국, 부국강병한 근대적 자주국가를 꿈꾸다’ 학술회의에서는 역사학자들이 격한 언쟁을 주고받았다. 이달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지 120주년을 맞아 기획된 행사였다.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는 학계에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앞서 문화재청은 142억 원을 들여 대한제국과 관련한 덕수궁 석조전과 중명전, 환구단을 잇달아 복원했다. 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선 대한제국의 무능이 망국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 진실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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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 내부는 서양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고종황제의 침실 등이 재현돼 있다. 오른쪽 사진은 고종 황제의 모습. 동아일보DB
이 교수는 특히 1902년 체결된 영일동맹이 대한제국의 투쟁을 저지하기 위해 일제가 영국 정부를 설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한제국의 자구책이 수포로 돌아간 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집요한 방해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대한제국기 대미관계 및 주미 공사관의 활동’ 논문에서 “망국의 책임을 일제의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과연 대한제국이 주어진 여건에서 최소한의 국가운영 능력을 갖췄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중립국 승인 외교 노력에 대해서도 “일본 방해가 치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군사력의 뒷받침 없이 중립국 외교에 매달린 정책은 안일했다”고 지적했다.
대한제국 비판론자들은 일제의 방해로 대한제국이 개혁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재평가론자들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클라우스 디트리히 홍콩교육대 교수는 ‘대한제국을 둘러싼 경쟁’ 논문에서 “1895년 청일전쟁이 끝난 이후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러시아, 일본을 포함해 어떤 나라도 한반도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했다”며 “이 시기에 몇 가지 지정학적 시나리오를 전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고 분석했다. 약 10년에 걸쳐 한반도에서 열강들의 세력 균형이 이뤄진 만큼 대한제국의 주체적인 외교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는 일제강점기를 포함한 한국 근현대사 전반에 대한 시각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재평가론자들은 대한제국 국호의 일부를 이어받아 ‘대한민국’이 된 것처럼 대한제국 역사는 임시정부로 고스란히 계승됐다고 본다. 항일 의병과 안중근 의사 거사에 앞서 고종의 밀지가 전달됐다는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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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