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빅데이터와 계획경제는 흥미로운 논쟁거리다. 계획경제 하면 생필품을 사려고 길게 늘어선 줄이 떠오른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활동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시대다. 관료 몇 명이 앉아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 값은 어떻게 매길지 결정해도 시장의 비효율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게 계획경제가 부활한다는 쪽 주장이다. 중국 IT 공룡 알리바바의 마윈(馬雲) 회장은 지난해 “빅데이터는 엑스레이 같은 역할을 한다. 시장을 예측하고 계획하는 것이 가능해져 향후 30년간 계획경제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를 밀어내고 승자가 될지는 미지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달 4일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과 그걸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소비자의 수요 데이터만으로 공급을 결정하는 체계로는 아이폰처럼 소비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품을 만들어내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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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국을 빅브러더 사회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온라인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은 페이스북과 구글을 통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이 사실로 드러나 뒤집어졌다.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는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한국의 대선 기간에 터진 가짜 뉴스 논란과 국가정보원의 댓글부대를 통한 여론조작 사건은 또 어떤가. 시바 바이디어나선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언론학)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세계의 민주주의가 인터넷을 통해 공격받고 있다. 21세기 소셜미디어 정보전쟁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첫 사망자가 됐다”고 한탄했다.
10년 전만 해도 IT는 독재국가엔 위협이, 민주화엔 촉진제가 될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IT는 독재국가엔 요긴한 통치 도구가, 민주국가엔 악몽이 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관심사나 정치 성향을 특정해 교묘히 가짜 정보를 흘려 불을 지르는 일은 너무도 쉽고 싸다. 누구를 탓할까. 페이스북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이유는 내가 자발적으로 시시콜콜 일상을 공유하고 입맛에 맞는 콘텐츠를 편식하며 ‘좋아요’를 누른 덕분이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잘못하면 조지 오웰이 상상한 경찰국가로 돌아갈 것”이라며 “개인은 빅브러더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용히 붕괴할 것”이라고 했다. 무서운 디지털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