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혈증 사망사건 20건중 13건, 첫 사망진단서에 다른 원인 기록 증상 모호하고 내과-외과 협진 미비 의사들 제때 진단 못하고 방치 잦아… 의료분쟁중재원조차 놓친 경우도
이민호 중재원 상임감정위원(한양대 의대 명예교수)은 최근 3개월간 접수된 패혈증 사망 사건 20건을 분석한 결과 A 씨처럼 최초 사망진단서에 사망 원인이 패혈증 대신 다른 것으로 기록된 사례가 13건이었다고 16일 밝혔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패혈증 사망자는 3596명으로 전체 사망 원인 중 12위다. 하지만 이처럼 숨겨진 사망자를 포함하면 당뇨병 사망자(9807명) 수치와 비슷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패혈증은 ‘피(血)가 썩는다(敗)’는 뜻으로 상처나 종기로 미생물이 들어가거나 화상으로 전신에 염증 반응이 나타나 여러 장기가 빠르게 나빠지는 상태를 말한다. △횡설수설하고 의식이 몽롱해지는 등 정신 상태가 변하거나 △호흡이 분당 22회 이상으로 가빠지고 △수축기 혈압이 100mmHg 아래로 떨어지면 패혈증을 의심해야 한다. 첫 증상을 보인 지 3시간이 지나기 전에 수액과 항생제를 맞으면 사망 위험을 10% 내로 낮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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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패혈증이 전신에 나타나기 때문에 깊이 연구하는 진료과가 드문 데다 내과와 외과의 협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을 찾은 패혈증 환자는 담당 내과 의료진이 외과적 발병 원인인 소장 괴사를 닷새 후에야 발견해 끝내 숨졌다.
패혈증을 방치하면 패혈성 쇼크로 악화돼 한 달 내 사망할 가능성이 30% 수준으로 치솟는다. 뇌졸중(뇌중풍·9.3%)이나 급성심근경색(9.6%)보다도 높은 사망률이다. 이 위원이 2007년 5월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방광조영촬영술을 받다가 숨진, 책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 씨(당시 70세)의 의료기록을 검토한 결과 의료진은 권 씨가 사망 한 달 전 패혈증 의심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았을 때 혈중 젖산 농도 등 필수적 검사를 실시하지 않고 흉부 X선 촬영만 네 차례나 한 정황이 나타났다.
패혈증 환자를 중재원조차 놓친 사례가 있다.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올해 2월 한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진 B 씨(90·여)의 감정서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중재원은 6월 “의료진 과실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가 2개월 만에 재감정을 통해 “패혈증 치료 조치가 미흡했다”고 정정했다. B 씨가 숨지기 두 달 전 당뇨병 탓에 괴사한 오른발 일부를 잘라낸 뒤부터 패혈증 의심 증상을 보였지만 의료진이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각 병원의 패혈증 대응 수준을 평가해 건강보험 수가 등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뉴욕주는 2012년 농구 경기 중 팔을 다쳐 응급실을 찾았다가 퇴원한 로리 스타운턴 군(당시 12세)이 이튿날 패혈증으로 숨진 것을 계기로 의료진의 패혈증 조기 진단을 의무화하는 ‘로리 규정’을 만든 바 있다. 정은영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특정 질환 사망자가 발생하면 당국에 보고하도록 한 ‘의료사고 주의보’ 제도에 패혈증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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