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보더의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展… 과자 등 일상소재에 철사로 팔 다리 만들어 ‘찰칵’
12일 서울 종로구 사비나미술관에서 만난 철사 예술사진가 테리 보더 씨. 그의 오른쪽 뒤로 먹다 남은 사과를 살 뺀 사과로 의인화한 ‘사과 다이어트’ 작품이 보인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사실 전 당신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어요. 테리 보더?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죠.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라는 전시(12월 30일까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던 영화의 아류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당신의 흥미진진한 작품사진들이 펼쳐지는 게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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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케이크 유산지로 메릴린 먼로를 형상화한 ‘메릴린 컵케이크’.
아, 인간적 친밀감이 확 밀려왔어요. 당신의 첫 작업이라는 ‘우편주문 신부’, 그것도 참 기발하더군요. “슈퍼마켓 레몬 선반을 지나는데, 진짜 레몬도 있고 레몬주스가 담긴 레몬 모양 통도 있었어요. 진짜 레몬은 가짜 레몬과 있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외로운 진짜 레몬이 마치 섹스 로봇을 사듯 가짜 레몬을 우편으로 주문해 받는 장면을 상상해봤어요.(웃음)”
해바라기 꽃잎을 자르고 붕대를 감아 반 고흐로 표현한 ‘해바라기 화가’.
무엇보다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배워요. 토스터 안에서 건배(영어로 toast)하는 두 식빵, 다 타서 꺼지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온기가 돼 주는 두 촛불의 모습에서 말이에요.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같은 사랑에 관한 소설들을 꺼내 읽어봤다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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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과자가 크림으로 맞붙는 걸 담은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 사비나미술관 제공
보더 씨, 저는 며칠 전 가을 연시를 샀습니다. 네 개씩 두 줄로 직사각형 접시에 담아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한 친구가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레고 같다.” 그때 생각했어요. 보더 씨를 흉내 내 ‘레고 감’이라고 제목을 달아보면 어떨까 하고. 앞으로 사물을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할 것 같아요. 위트 있는 당신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