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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남한산성’과 再造山河

입력 | 2017-10-09 03:00:00

주화론-척화론 불꽃 튀는 영화 ‘남한산성’ 놓고 아전인수 해석하는 영화정치
“외교적 노력으로 전쟁 막아야”
동북아균형자론 연상케 하는 현대판 주화론은 실리적인가
이념에 사로잡힌 反正세력… 글로벌 정세변화 직시하는가




김순덕 논설주간

이번엔 ‘남한산성’이다. 정치인들이 화제의 영화를 보고 한마디씩 하는 ‘영화 정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3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끝없는 분노가 치밀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얼마든지 외교적 노력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민족의 굴욕과 백성의 도륙을 초래한 자들은 역사 속의 죄인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도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고 전란의 참화를 겪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무능과 신하들의 명분론 때문’이라고 나섰다.

박 시장도 지적했듯 무책임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현실 판단과 무(無)대책의 명분론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른바 진보좌파 시민단체 출신 박 시장의 방점은 이보다 ‘외교적 해결’에 찍혀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 사이에 남북 대결이 깊어지고 안보의 위기는 커져간다’는 문장에선 진보진영의 전형적 안보 인식도 엿보인다. 거칠게 해석하면, 북의 핵무장은 무력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는 김정은 세습왕조 때문이 아니라 미국 등 강대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얘기다.

외교보다 전쟁 좋다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자신 있으면 박 시장이 당장 외교천사로 나서주면 고맙겠다. 외교도 상대가 있는 것이고, 어떤 내용으로 외교에 나설 건지 국론통일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정묘호란에서 병자호란까지 10년간 인조는 ‘의리 외교’에 몰두했고 주화파와 척화파는 ‘같은 좌석에서 서로 용납하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공론(公論) 합의가 불가능했다. 중원의 패권이 바뀌는 명(明)·청(淸) 교체기, 임진왜란에서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준 명과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론의 척화파 김상헌이나 치욕을 겪더라도 백성은 살려야 한다는 실리적 주화파 최명길을 둘 다 충신으로 그린 것은 영화의 미덕인 셈이다.

나라의 명운을 놓고 보면 둘 다 옳다고 할 수 없다. 명분론에 매달려 백성을 죽음으로 내몬 척화파를 비판한 점에선 홍 대표와 박 시장도 일치한다. 다만 지금의 여야 중 어느 쪽이 척화파에 가까우냐에 대해선 다르다.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는 진보좌파는 “척화파가 보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홍 대표 같은 보수우파의 눈에는 북핵 대처에 무능해 보이는 문재인 대통령과,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사드에 한사코 반대하는 여권 사람들이 영락없는 척화파다.

특히 진보좌파의 외교론이 낯설지 않은 것은 2005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동북아균형자론이 한미동맹을 이탈하기 위한 수순이라면 오늘날 미국이 멸망 직전의 명나라인지, 강성해진 청나라인지를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그때 동북아균형자론을 옹호했던 동북아시대위원장이 최근 “한미동맹을 깨더라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했던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다.

역사는 무심히도 풍부해서 거의 모든 결론에 들어맞는 사례를 찾아내는 게 가능하다. 자연과 역사에선 살아남은 것이 선(善)이고 몰락한 것이 악(惡)일 뿐이다. 미중의 글로벌 패권 경쟁이 명·청 교체기를 연상케 하는 것보다 두려운 점은 반정(反正)세력이 하나같이 이념에 눈멀어 현실과 글로벌 정세 변화를 직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나쁘고 평화는 좋다는 개살구 같은 명분에 사로잡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결기가 안 보이는 점도 한스러울 만큼 흡사하다.

47일간의 남한산성 고투 끝에 영화 속 인조는 “나는 살고자 한다”며 항복을 결정했다. 당시 조선군은 청을 격퇴한다는 전략보다 왕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 전쟁사 연구결과다. 인조는 척화의 주장이 옳은 계책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것이 반정의 명분이었기 때문에 엄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반정세력이 시퍼렇게 버티고 있어 ‘옳은 논의’와 ‘필요한 조치’ 사이에서 결단도 내리지 못했다. 반정 뒤 민생 안정에 힘쓰기는커녕 광해군 추종세력인 북인을 탄압하는 등 민심에 반(反)한 탓에 호란이 터지자 임진왜란 때 같은 의병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런 인조 정권을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고 칭송한 역사학자도 있다. 재조산하(再造山河·나라를 다시 만들다)라 쓰고 적폐청산이라 읽는 문 대통령의 추석 다짐은 그래서 불안하다. 과연 누가 살고자 하는, 그래서 무엇을 하려는 재조산하인가.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