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
마음의 방어 기제는 무엇을 방어할까요. 외부의 위협도 당연히 방어하지만 내 마음에서 올라오는 불편함과 불안과 충동도 해결하려 합니다. 마음의 방어 기제는 다양합니다. 주로 무의식에서 활동합니다. 스스로 알아채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방어 기제의 화끈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투사(投射)’입니다. 내 마음의 한 부분, 불편하거나 위험하거나 인정하기 싫은 것을 다른 사람을 향해 쏘는 겁니다. 억압으로 품고 있기보다는 밖으로 내보내는 기제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아주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워하면 됩니다만, 나는 그러는 나를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그러면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내가 그에게 느끼는 미운 감정을 그에게 던져서 상대방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면 편안합니다. 그렇게 그와 거리를 두는 동시에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내 이미지를 보호합니다. 외도를 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죄책감으로 괴롭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부인에게 투사해서 부인이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해 죄책감을 없앱니다. 심하면 의처증이 됩니다.
방어 기제에도 미사일방어 시스템처럼 급수가 있습니다. 미성숙한 방어, 중간급 방어, 성숙한 방어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미성숙한 방어일수록 그것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미성숙한 방어의 대표가 퇴행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변하는 겁니다. 다 큰 아이가 학교 가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 오줌을 지린다면 퇴행입니다. 회사원이 직장에서 전날 상사에게 야단을 맞았다고 다음 날 아침 출근을 거부한다면 이 역시 퇴행입니다.
다음은 부정(否定)입니다. 뻔한 일을 아니라고 우기는 건데 인정하기에는 고통스럽거나 불편해서입니다. 위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위염일 것이라고 우긴다면 부정입니다. 잠시라면 위로가 되지만 너무 오래 그러다가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결국 치료 시기를 놓칠 겁니다. 약물 중독에 걸리는 사람들도 ‘나는 중독이 될 리가 없어’라는 부정을 끈질기게 하지 않았다면 그리 되지 않았을 겁니다.
부정과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 ‘회피’입니다. 회피는 불편한 사람이나 상황을 피하는 겁니다. 폐소공포증이 있으면 승강기를 피해 계단으로 다닙니다. 이유는 댈 수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효과가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싫은 사람일수록 결국 외나무다리에서 만납니다. 이자까지 붙여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전치’도 있습니다. 잊고 싶은 생각이나 감정을 억압하려다가 엉뚱한 대상으로 옮겨버리는 방어 기제입니다. 헤어짐의 쓰라림을 잊으려고 그녀와 늘 갔던 특정 상호의 커피 전문점에 그 감정을 옮기고 그곳을 늘 피해 다닌다면 전치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 겁니다. 말로 풀어 표현하면 될 감정이나 생각을 행동으로 불쑥 옮기는 ‘행동화’도 방어 기제입니다. 결국 본인에게 손해로 돌아가지만 압력밥솥에서 분출되는 증기처럼 마음의 압력을 잠깐 줄여줍니다. 화난다고 주먹을 쓰거나 경적을 울렸다고 길 한가운데 차를 세우고 상대를 폭행하면 행동화를 한 겁니다. 스트레스 해소는 잠시이고 법의 엄중한 처벌은 오래 남습니다. 미성숙한 방어 기제입니다.
성숙한 방어에 이타주의가 속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봉사에 적극적인 경우입니다. 극단적인 이타주의자는 남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타주의 안에도 그 사람 마음의 갈등이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이 정신분석학의 입장입니다. 가족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에만 온 힘을 기울인다면 스스로도 어떤 동기와 갈등이 숨어 있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유머도 방어 기제입니다. 불편한 사람이나 상황을 마음에서 처리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프로이트는 나치 독일이 자신의 책들을 금서로 지정하고 불태운 행사에 대해 “중세시대에는 사람을 태웠는데 책을 태웠으니 정말 나는 재수가 좋다”는 식의 재치 있는 논평을 하며 마음을 달랬다고 합니다.
우리 마음은 방어 기제라는 미사일 체계를 살아서 숨 쉬는 순간에는 늘 작동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한다고 생각될 때는 단정 짓기 전에 혹시 내가 그에게 먼저 어떻게 하고 있지 않은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이 내게 투사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대화와 소통으로 접근할 수 있겠으나 상대방의 방어 체계가 막아서니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원천적으로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니 서로 상대방에게 투사를 하며 자신의 성찰은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일이 너무 흔히 눈에 띕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