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유동성 단계적 회수… 불확실성 커지는 한국 경제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0월부터 4조5000억 달러(약 5101조 원)에 이르는 보유자산을 축소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양적완화를 통해 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푼 지 약 9년 만에 이를 회수하는 조치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 이미 단행한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돈줄 조이기를 가속화하면서 한국 경제에는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북한 리스크, 중국의 사드 보복 등 불안 요소가 많은 상황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마저 나타나면 금융시장은 물론이고 경기 전반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크다. 》
연준의 보유자산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양적완화(QE)를 단행하면서 시장에서 사들인 국채, 주택담보부채권(MBS) 등이다. 따라서 보유자산 축소는 양적완화와 정반대의 정책이다.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미국의 자신감, 금융위기 시대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북한 리스크(위험)와 경기 회복 부진 등 가뜩이나 악재가 많은 한국 경제에는 미국의 이런 조치가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돈줄 조이기로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 국내 금융시장 불안이 커져 실물 경기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준의 보유자산 축소는 재투자를 중단해 채권에 표시된 금액을 돌려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재투자가 멈춘 규모만큼 시중 자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다음 달 100억 달러(약 11조3380억 원)를 시작으로 분기(3개월)마다 축소 금액을 100억 달러씩 늘린다. 1년 뒤에는 매년 500억 달러를 줄여 최종적으로 보유 자산을 2조 달러 수준으로 축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 1.00∼1.25%인 미국 기준금리는 동결됐다. 하지만 연준이 연내 한 차례 추가 인상을 시사하면서 12월 FOMC에서는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금리 인상과 보유자산 축소의 기본 메시지는 미국 경제가 잘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연준은 올해 미국의 국내총생산(GPD) 성장률 전망치를 연율 기준 2.2%에서 2.4%로 높였다.
○ 12월 한미 금리 역전 눈앞…한은, 기준금리 인상 나서나
일단 한국 금융시장은 안정적 흐름을 유지했다. 21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0.24% 내린 2,406.50에 장을 마쳤다. 한국 정부는 미 연준의 이번 조치가 예상한 수순이라고 평가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미국 조치가 실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국제금융센터는 “보유자산 축소 규모가 앞으로 3년간 8800억 달러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시장에 급격한 충격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준이 12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은 시간문제가 됐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 연 1.00∼1.25%에서 0.25%포인트 오르면, 한국 기준금리(연 1.25%)를 넘어서게 된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북한 핵 위협도 변수다. 변성식 한국은행 안정총괄팀장은 “북한 리스크 영향으로 8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고 앞으로도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국 경제 회복세의 둔화까지 겹치면 자본 유출이 순식간에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에 따른 달러 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세를 보이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4원 오른 1132.7원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셈법이 복잡해졌다. 한미 간 금리 차 확대는 통화정책 고려 요인이 될 것이다”며 금리가 역전될 경우에 대비할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금리 인상이 14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에 충격을 줄 수 있고 투자와 소비 위축에 따른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한은이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 / 신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