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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승건]뒤로 가려 하는 한국 스포츠

입력 | 2017-09-18 03:00:00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얼마 전 일본이 육상 남자 100m에서 ‘마의 10초 벽’을 깼다. 처음 뉴스의 제목만 봤을 때 당연히 혼혈 선수인 줄 알았다. 아버지가 가나 사람인 사니 브라운 압델 하킴이나 자메이카 2세인 케임브리지 아스카일 것이라 짐작했다.

아니라 더 놀랐다. 9초98을 끊은 기류 요시히데의 부모는 일본인이다. 그에 앞서 9초대를 기록한 아시아 선수는 5명이었는데 이 중 4명은 자메이카 등에서 귀화했다. 순수 아시아인은 쑤빙톈(중국)뿐이었는데 기류는 쑤빙톈의 기록을 0.01초 앞당겼다.

일본 엘리트 스포츠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 메달 레이스에서 한국에 뒤졌던 일본은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금메달 12개를 얻어 다시 한국(금 9개)을 앞섰고 2020년에는 금메달 30개 등 총 80개의 메달로 종합 3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은 1964년 도쿄,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잇달아 3위에 오른 뒤 생활체육으로 눈을 돌렸다. 학교와 클럽체육을 활성화시켰고 체육시설을 크게 늘려 노인들도 맘껏 운동할 수 있게 했다. 생활체육에 양분을 몰아주는 동안 엘리트체육은 주춤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17위에 그치더니 1996년 애틀랜타에서는 23위까지 추락했다. 생활체육 기반을 다졌다고 판단한 일본은 ‘두 토끼’ 잡기에 나섰다. 한국스포츠개발원(옛 체육과학연구원)과 유사한 일본국립스포츠과학센터(JISS)를 2001년에, 태릉선수촌과 비슷한 내셔널트레이닝센터(NTC)를 2007년에 설립하며 올림픽 메달‘도’ 겨냥했다. 넓은 저변의 생활체육이 수많은 꿈나무를 배출하고, 거기서 선발된 엘리트 선수들이 집중훈련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기류도 초등학교 때 축구 클럽에서 운동하며 가능성을 발견한 선수다.

가난했던 시절 올림픽 메달에 목숨을 걸었던 한국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생활체육 기반을 제대로 갖춰야 엘리트체육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한국스포츠개발원을 둘러싼 최근 상황은 ‘깨달음’과 ‘실천’은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기관인 대한체육회가 이 가운데 스포츠과학실 인력만 떼어내 스포츠개발원 조직을 찢어 놓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개발원은 크게 정책개발실, 스포츠과학실, 스포츠산업지원센터로 구성돼 있다. 정책 연구(개발실)와 현장 지원(과학실)이 분리되면 제 기능을 하기 힘들다.

체육과학연구원이 국가대표 지원 목적으로 1980년대 출범한 것은 맞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 역할이 크게 달라졌다. 지금은 학교체육, 생활체육, 장애인체육 등 국민 모두를 위한 연구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장 지원 인력만 필요하다는 것은 엘리트체육만 강조하던 과거로의 회귀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러시아를 제치고 3위에 올랐던 개최국 영국은 2015년 ‘미래 스포츠: 활기찬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발표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총리는 “올림픽과 패럴림픽 성과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것에서 벗어나 장기간에 걸쳐 선수들을 육성해야 한다. 그동안 쌓아온 스포츠과학의 성과는 올림픽 이외의 종목도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탄한 생활체육 기반 없이는 엘리트체육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시대다. 눈앞의 메달만 욕심낼 게 아니라 멀리, 넓게 생각해야 한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