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혁신계획에 글로벌 홍보 전략을 담는 등 국가 이미지 개선 작업에 공을 들일 예정이다. 하지만 실제 국정운영에서 기본 자유와 정책 안정성을 무시하는 등 구시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런 사우디가 이미지 개선을 위한 글로벌 국가 홍보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핵심은 유럽(런던 베를린 파리 모스크바)과 아시아(베이징 도쿄 뭄바이) 주요 지역에 자국을 알리고, 부정적인 보도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는 ‘홍보 허브(public relations hubs)’를 설립하는 것이다. 사우디는 홍보 허브들을 통해 보도자료 작성, 소셜미디어 콘텐츠 생산,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의 사우디 방문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사우디의 글로벌 홍보 전략은 새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MBS)가 주도하는 ‘국가혁신계획’에도 포함돼 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의 아들로 올 6월 사촌형(무함마드 빈 나예프 알 사우드)을 왕세자에서 끌어내린 그는 개혁·개방과 함께 △석유 의존도 줄이기 △해외 투자 유치 활성화 △문화산업 육성 등을 강조해 왔으며 국가 홍보에도 관심이 클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사우디는 이달 초 자국 가수들에게 카타르를 비판하는 노래를 부르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영국의 중동 전문매체인 미들이스트아이(MEE)에 따르면 사우디의 유명 가수 7명이 ‘카타르를 가르쳐라’란 제목의 노래를 발표했다. 가사에는 ‘카타르와 그들의 편에게 가르쳐라. 우리는 참고 있지만 사태가 심각해지면 행동할 것이다’는 협박성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음반은 사우디 왕실 구성원의 소유 음반사인 ‘로타나’가 제작했다. 중동 안팎에선 “유치한 방식의 선전선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홍보 전략이 세상에 알려진 날(12일) 사우디 당국이 고위 성직자인 셰이크 살만 알 우다 등 비판적인 자국 인사 30여 명을 구금해 국가 이미지를 스스로 망가뜨렸다. MBS의 시대가 열리기 전 반(反)정부 인사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단속 작업을 진행한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현지 인권단체에 따르면 구금된 이들은 MBS와 사우디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다 미운털이 박혔다. 특히 수백만 명의 소셜미디어 팔로어를 거느릴 만큼 영향력이 큰 알 우다는 사우디와 카타르 간 갈등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금됐다. 그는 1990년대 사우디 내 개혁 운동의 리더였고, 2011년 발생한 ‘아랍의 봄’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해 발표한 중장기 경제개혁 정책을 1년 만에 대거 수정하고, 갑작스럽게 왕세자를 교체한 뒤 폐위된 왕세자를 가택 연금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도 최근 국제적으로 사우디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정부의 글로벌 홍보 전략은 단순한 보여주기 식 선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불가피한 것이다.
중동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사우디가 자주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모습을 보인 것도 현재 혼란스러운 중동 정세의 원인 중 하나”라며 “사우디가 예측 가능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상황도 개선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우디가 적극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중동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의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도 사우디가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니 안정화 수준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면 동북아와 동유럽 같은 다른 불안정 지역의 리더 국가들에 책임감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노력이 쌓인다면 사우디의 국제사회 위상도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