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
꽤 오랜만에 공부법 광고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우리 애는 머리는 좋은데 공부법을 몰라서 그렇다’는 부모들의 희망과 남들보다 빨리빨리 잘해야 한다는 대한민국 특유의 조급증, 여기에 학생들의 불안감까지 뒤섞여 몇 년마다 나타나는 공부법 열풍이 또 불려는가 보다.
공부 습관을 들여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라, 이미지화해서 외워라,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할 땐 하고 놀 땐 확실히 놀아라…. 요즘 인기 있는 공부법이 아니라 1980, 90년대 신문기사에서 발췌한 구닥다리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공부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책만도 3000권이 넘는다. 천재들의 공부법, 퇴계 공부법부터 66일 공부법, 15분 공부법 등 시간에 관한 것도 부지기수다. SKY는 약한지 하버드, 스탠퍼드 공부법 정도는 돼야 하고 심지어 꼼수 공부법, 치사한 공부법, 마녀의 공부법까지 실로 다양하다.
어른들 눈에는 순 딴짓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 순간들을 찾아가고 있다. 다만 그게 수능 공부가 아니어서 어른들에게는 안 보일 뿐이다. 사실 시험공부는 공부의 극히 일부다. 공부의 성자, 공자님께서는 자신은 그저 좋아하는 걸 힘써 탐구한 사람이라며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바로 공자님의 공부법, 즉 좋아하는 걸 힘써 탐구하며 즐기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 말하는 ‘덕질’이다.
“덕질 하면서도 먹고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세요.” 얼마 전 기관에서 연 정책캠프에서 한 아이가 시장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한 말이다. 아이의 고민과 달리 덕질 덕분에 먹고살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미 필자가 직장생활에서 요긴하게 쓰고 있는 능력은 어린 시절 해킹에 빠져 온갖 파일을 뒤져가며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던 시간과 게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친구들과 나눈 전략적인 대화들, 어둠의 루트를 헤매며 정보의 실마리를 모아 분류하고 구조화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것이 많다. 원숭이와 코끼리, 물고기가 나무 타기 하나로 시험을 봐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은 곧 무너질 것이다. 왜냐하면 나무 타기는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덕질을 맘껏 응원해주면 어떨까. 우리 세대 노후가 이 덕질 덕분에 보장될지 누가 알겠는가.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