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그리고 그 비곗점과 밥알과 설핏 말린 국물과 부산의 사투리와, 그리고 국밥만 평생을 만 주인할머니의 앞치마를 함께 씹어 넘기는 것이다. 그것이 부산이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박찬일·푸른숲·2012년)
나는 입덧이란 걸 믿지 않았다. 간절하게 먹고 싶던 무언가가 막상 식탁에 올라왔을 때 헛구역을 하는 그런 모습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장면인 줄 알았다.
그랬던 내가 초여름 지독하게 입덧을 했다. 몸은 분명 바닥에 누워 있는데 머리와 위장은 하루 종일 롤러코스터 위에 있는 듯 울렁거렸다. 생각나는 것들은 희한하게도 20년 넘게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던 기억 저편의 음식들이었다. 어린 날 주말이면 엄마가 튀겨서 하얀 종이 위에 소복소복 쌓아주던 감자 크로켓, 소금 친 계란 프라이 한 장 들어갔던 토스트 같은 것들. 몸이 원한 건지 마음이 원한 건지, 나는 망연히 누워서 대여섯 살의 아이처럼 그 접시들을 간절하게 떠올리곤 했다.
박찬일 셰프는 글 쓰는 요리사로 잘 알려져 있다. 합정에서, 조금 더 최근에는 광화문에서 만났던 그의 음식은 ‘엣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친근하다. 이색적인 메뉴라 해도 막상 나온 음식은 수더분하다. 그의 글도 다르지 않다. 멋 부리는 미식 기록이 아니라, 투박하지만 누구나 기억 속에 갖고 있는 따뜻한 밥상 하나를 불러내는 글이다.
입덧이 끝나고 더 이상 크로켓 생각이 나지 않게 됐지만 그 초여름의 간절함은 긴 여운을 남겼다. 판박이 메뉴판과 데일 듯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점심을 해결하는 도심에서, 기억 속 저편에 있는 소박한 어린 날의 맛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