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불청객, 바퀴벌레의 모든 것 세계 4000여종…한국엔 약 10종 서식 사람에게 병원체 100가지 이상 전파 빙하기에도 살아남은 놀라운 생명력 평생 한번 교미로도 일생 알 낳아 유연하고 민첩한 신체특성 가져 미국-러시아 연구팀, 모방 로봇 개발
미국 UC버클리대 폴리페달 생체역학연구실 로버트 풀 교수팀이 하버드대와 공동으로 개발한 바퀴벌레 로봇. 겉모습은 물론 구조까지 살아있는 바퀴벌레를 흉내내 만들었다. 등껍질은 탄성이 있고 충격을 흡수하는데다 여러장으로 나뉘어 접어진다. 강한 충격을 받아도 문제없고 몸 높이를 절반까지 낮출 수도 있다. 6개의 다리를 교차로 움직이며 좁은 공간 밑에서도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어 지진 등 재난현장에서 생존자 파악에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UC버클리대 제공
세계적으로 바퀴벌레는 4000종이 넘는다. 이 중 우리가 보는 것은 극히 일부. 전체 바퀴벌레 종의 99%는 야외에서 산다. 원래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 사는 평범한 곤충인데 그중 일부가 도시에 적응했고, 교통과 무역의 발달에 힘입어 세계에 퍼져 지금 우리가 아는 바퀴벌레가 됐다.
한국에는 약 10종류의 바퀴벌레가 산다. 이 가운데 산바퀴와 경도바퀴는 밖에서 살며 독일바퀴와 일본바퀴, 미국바퀴(이질바퀴), 먹바퀴가 실내에 산다. 실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은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에 진한 갈색을 띠는 독일바퀴다, 이들은 실내 바퀴벌레의 83%를 차지한다.
여기저기 벗어놓은 허물도 문제가 된다. 세스코 기술연구소 관계자는 “허물이나 사체가 바짝 마르면서 부서져 먼지처럼 날리다 피부에 닿거나 호흡기로 들어오면 알레르기를 일으키기도 한다”며 “바퀴벌레 배설물에 들어있는 물질도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사람에게는 비호감 해충이지만 과학자들에게 이들의 놀라운 생명력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바퀴벌레는 한 번만 교미해도 일생 알을 낳을 수 있다. 미국바퀴는 알 14∼18개가 든 알집을 4∼10일 간격으로 일생 동안 최대 59번 낳는다. 알을 자주 여러 개 낳는 데다 알집을 안전한 곳에 숨겨두는 습성이 있다. 빙하기가 들이닥치고, 지구에 소행성이 부딪쳐도 살아남은 비결이다.
수컷 없이 암컷끼리도 번식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도 올해 3월 나왔다.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팀이 암컷 세 마리를 같이 뒀더니 열흘 만에 미수정란을 이용해 자손을 번식했다. 바퀴벌레가 단성생식을 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밝혔다. 그 후 열다섯 마리를 함께 두는 실험을 했더니 이런 방식으로 3년 동안이나 무리를 유지했다.
놀라운 생존력은 바퀴벌레의 유연하고 민첩한 신체 덕분이기도 하다. 바퀴벌레의 이동 속도는 초속 25cm로 다른 곤충보다 빠른 편이다. 몸 두께를 원래보다 20% 이상 납작하게 만들어 좁은 곳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
지난해 2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폴리페달 생체역학연구실 로버트 풀 교수와 하버드대 로봇공학자 코식 자야람 교수팀이 개발한 로봇은 외골격이 마치 트럼프카드를 여러 장 펼친 듯한 모양이다. 판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몸을 절반가량 납작하게 만들 수 있다.
산사태나 지진, 대형 화재 등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재난 현장에서 생존자를 파악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퀴벌레의 생존 노하우를 인간이 배운 셈이다.
바퀴벌레는 뇌와 신경계의 작동을 연구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연구팀은 2013년 바퀴벌레를 좀비처럼 원격조종할 수 있는 스마트칩을 만들었다. 이 칩을 등에 단 바퀴벌레는 스마트폰 앱으로 조종하는 대로 방향을 바꿔 움직인다.
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zzung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