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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개 민간업체서 ‘친환경 인증’ 전담…매년 수천건 부실 적발

입력 | 2017-08-17 03:00:00

살충제 검출 7곳중 6곳 ‘친환경’




고개 숙인 농식품부 장관-식약처장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살충제 계란’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왼쪽 사진). 이날 서울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도 고개를 숙였다. 세종=뉴시스·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우리집 계란은 친환경이라 괜찮을 거야.”

서울에 사는 주부 김지영 씨(60)는 15일 아침 처음 ‘살충제 계란’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냉장고 안의 친환경 무항생제 계란은 문제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김 씨의 기대는 딸(30)의 한마디에 모두 무너졌다. “엄마, 이번에 (살충제) 나온 농장 거의 다 친환경 농장이래.”

‘친환경’ 표시를 믿고 계란을 샀던 소비자들 상당수가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장 7곳 중 6곳이 친환경 농산물 인증, 특히 무항생제 인증을 받은 곳이기 때문이다.

○ 무늬만 친환경 농장

이번에 적발된 산란계 농장들은 ‘친환경 인증’이라는 훈장만 갖고 있을 뿐 실상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비펜트린 성분이 초과 검출된 전남 나주시 정화농장은 16일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차단했다. 간간이 보이는 직원들은 살충제 사용 여부에 대해 일절 해명을 하지 않았다. 전남도와 나주시 등의 조사에 따르면 이달 초 정화농장에서 살충제가 살포됐다. 닭이 있는 상황에서 계사 바닥에 살충제를 그대로 뿌렸다는 것이다. 인근 농장주인 A 씨(39)는 “정부에서 살충제를 사용하도록 나눠주기만 하고 정작 사용법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곳이 친환경 인증 농장이라 아예 살충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번에 비펜트린 성분이 초과 검출되지 않았다면 농장에서는 계속 살충제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살충제 계란이 처음 불거진 경기 남양주시 마리농장도 친환경 인증 농장이다. 역시 살충제를 쓰면 안 되지만 버젓이 사용 제한된 성분의 살충제를 사용했다. 청결 상태도 일반인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15일 취재진이 마리농장을 찾았을 때 이곳은 입구부터 각종 쓰레기로 가득했고 코를 막지 않고는 참지 못할 만큼 악취가 심했다. 내부에 쌓여 있는 계란판에는 파리 떼가 가득했고 각종 살충제와 항생제 봉투들도 비에 젖은 채 바닥에 널려 있었다.

살충제 보급 과정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손발이 맞지 않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나주시에 따르면 정화농장을 비롯해 나주 지역의 양계농장 25곳은 모두 친환경 인증을 받았다. 그런데도 나주시는 올 5월 관내 전체 양계농장에 닭 진드기 살충제를 무상 지원했다. 정부가 가축 전염병 예방을 위해 살충제를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내면서 ‘친환경 인증 농장을 제외하라’는 조건은 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친환경 살충제’가 살충 효과가 떨어져 농가의 외면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들 살충제는 진드기 등 해충을 직접 없애기보다 농축산물의 면역력을 강화해 해충 저항력을 키워주는 효과를 내는 제품이 많다. 경기도의 한 양계농장주는 “친환경 농장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주는 살충제를 쓰는 척하지만, 배포 이후에는 누구도 확인을 안 하기 때문에 살충 효과가 강한 살충제를 따로 구해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 부실 인증 적발만 한 해 수천 건

친환경 계란은 항생제를 쓰지 않은 무항생제 계란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은 유기축산 계란 두 가지로 나뉜다. 두 종류 모두 살충제 사용은 금지돼 있다. 살충제 사용 여부를 가리기 위해 1년에 2번 잔류물질검사를 받는다. 검사 결과 금지된 성분이나 기준치를 넘는 양이 나오면 인증은 취소된다.

식품 위생에 관한 사안이라 소비자의 관심이 크지만 정작 인증 업무는 정부가 아니라 64개 민간업체가 담당한다. 1999년 제도가 시작될 때만 해도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국립농산물관리원(농관원)이 전담했지만 “정부는 관리감독만 잘하면 된다”며 2002년부터 민간업체에 조금씩 위임하기 시작했다. 결국 올해 6월부터는 민간업체에 인증업무가 100% 이관됐다. 이렇게 생산되는 친환경 계란이 전체의 56%, 일반 계란이 44%를 차지한다. 농가 수로는 전체 1456개 중에 780곳, 절반을 넘는다.

친환경 인증을 받으면 무항생제 농가는 연간 2000만 원, 유기축산 농가는 3000만 원까지 직불금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인증을 원하는 농가가 많았고, 도입 당시부터 부실 인증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13년에는 민간 인증대행업체 직원이 자기가 키운 농산물에 ‘셀프인증’을 하기도 했다. 인증이 취소되면 1년이 지나야 재인증을 받을 수 있지만 기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인증서를 준 사례도 나왔다.

부실 인증으로 적발됐다가 다시 인증업무를 맡은 업체도 있다. 14일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된 남양주시 농장에 인증서를 내준 업체도 과거에 부실 인증 사실이 적발돼 2015년 2∼5월 4개월간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4년에 농식품부가 적발한 부실 인증 건수는 6411건, 지난해에도 2734건이나 됐다.

나주=이형주 peneye09@donga.com / 김배중 기자 / 세종=최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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