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마스카와 도시히데 지음/김범수 옮김/208쪽·9500원·동아시아
1954년 3월 미국 정부가 태평양 중앙과 마셜제도에 위치한 비키니 환초에서 실시한 수소폭탄 실험. 동아시아 제공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저자의 스승 사카타 쇼이치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동시에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다.
저자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이던 1945년 미군 폭격기 공습으로 집에 소이탄(발화성 물질을 넣은 폭탄)이 떨어져 죽을 위기를 넘겼다. 고작 5세 때의 일이다. “당시의 기억이 다시 현실이 되는 일을 막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히틀러는 반(反)유대정책을 실행하며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하버가 개발한 독가스를 이용해 학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버는 유대인이었다. 하버는 의도치 않게 동족을 대량 학살한 원흉이 됐다. 이처럼 독재자나 범죄자의 손에 넘어간 과학기술은 개발자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경고다.
이 책은 또 4년간 20억 달러의 예산과 3000명의 과학자를 동원해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 일본 원전 사고 등을 통해 과학의 파괴성을 경고한다. ‘타락한 권력과 무책임한 과학이 만났을 때’라는 책의 부제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딱딱한 과학 이야기를 인류사의 중대한 사건인 전쟁과 연결해 쉽게 풀어나간 점이 인상적이다. 문장마다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는 고수의 능력을 엿볼 수 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