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현 사회부 기자
실리콘밸리의 또 다른 스타트업 ‘피지오큐’는 작은 바이오센서를 피부에 대기만 해도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팔에 혈압측정기구를 두르고 혈압을 재는 현재 방식과 비교하면 무척 편리하다. 측정한 혈압을 주치의나 건강검진센터에 바로 전송할 수도 있고 매일매일의 혈압 기록을 모아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도 있다. 고령자가 많은 일본 보험회사와 인구가 많은 중국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지난달 취재차 찾은 실리콘밸리에는 이들 업체처럼 한국인이나 한국계 엔지니어들이 만든 회사가 적지 않았다. 이 업체들은 제품과 기술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보는 한국 이공계의 현실은 밝지 않은 듯했다. 말 속에서는 이공계 후배들에 대한 안쓰러움이 묻어났다.
학생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까닭이다. 이공계 학생들은 “기술만 가지고는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보기술(IT)을 전공해도 공기업에 가면 프린터만 고친다더라” “공기업 전산팀, 정확히 말하면 ○○○○공사 전산팀이 최고의 직장”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한다.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했다는 청년은 “회사 사장이 ‘대기업에서 돈을 안 줘서 나도 월급을 못 받는다’고 하더라”며 “우리나라에서 이공계는 답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한국인 창업자들도 한국에서 기술자가 창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입을 모았다. 한 창업자는 “공공기관에서 기술보증을 받아도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렵고, 제품 개발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기술자에게 묻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창업했다 하더라도 한 번 실패하면 ‘패자 부활’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현실도 여전하다고 했다.
교육은 창의적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문제해결형’ 인재는 줄어들고, 창업의 길은 멀고도 험하며, 정부의 지원은 효율적이지 않다. 이 같은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약한 고리는 어디일까. 그것도 모르면서 우리는 이공계 학생들에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가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