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주·사회부
하지만 때가 늦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김후균)는 이날 이 청장이 직권을 남용해 광주경찰청 페이스북 게시물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의혹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권 조정이라는 숙원을 앞두고 경찰 수장이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된 것이다.
강 학교장이 제기한 의혹의 핵심은 이 청장이 지난해 11월 19일 강 학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게시물 삭제를 지시하며 “민주화의 성지에서 근무하니 좋으냐” “촛불 가지고 이 정권이 무너질 것 같으냐” 등의 발언을 했는지 여부다. 이 청장은 “그날 통화한 사실이 없고 촛불 관련 발언을 한 적도 없다”고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광고 로드중
이번 사태가 초래된 배경을 보면 6월부터 직권남용 등의 의혹으로 감찰을 받아온 강 학교장이 수사까지 받을 처지에 놓이자 이 청장을 걸고넘어진 듯한 모양새다. 하지만 강 학교장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 경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가워지고 있다.
강 학교장의 처신을 두고 경찰 고위직 출신인 조길형 충북 충주시장과 비교하는 의견도 나온다. 조 시장은 강원경찰청장으로 근무하던 2012년 뇌물수수 의혹으로 감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그는 “돈을 받은 사실이 없어 억울하긴 하지만 기관장으로서 조직에 누를 끼칠 수 없다”며 경찰청에 스스로 대기발령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는 무혐의가 밝혀져 명예를 회복했다.
이 청장과 강 학교장은 대한민국 경찰공무원 11만7000명 중 33명(0.03%)뿐인 치안감 이상 최고위 수뇌부다. 한 일선 경찰관은 기자에게 “경찰의 ‘별’이라는 수뇌부가 수사권 독립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는 꼴이다”라며 “경찰이 이토록 부끄러운 건 처음”이라고 한탄했다. 이 청장과 강 학교장이 각자 어깨에 짊어진 계급장의 무게를 생각해볼 때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