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도쿄 특파원
원로 언론인 다하라 소이치로 씨가 7월 28일 총리와 독대한 뒤 “‘정치생명을 건 모험’을 제안했다”고 밝힌 것이 진원(震源)이다. 평소 정권 비판에 앞장서 온 그가 총리 관저 오찬에 초대됐고, 면담 1시간 20분 동안 총리가 밥도 안 먹고 그의 얘기에 열중했다는 것이다.
83세의 고령에도 매달 생방송으로 철야 TV토론을 진행 중인 다하라 씨는 이후 ‘모험’의 내용은 함구한 채 “곧 알게 된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4일 BS아사히방송 녹화에서도 “총리는 이달 중 움직일 거다. 상당히 진지하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계 일각에서는 다하라 씨가 총리에게 전격 방북을 제안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는 아베 총리에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직접 만나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도록 설득하라. 그러면 지지율도 회복될 수 있다”고 조언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독대가 이뤄지기까지의 전후 상황도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실어준다. 다하라 씨는 먼저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 등을 만나 같은 제안을 했고, 지난달 20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만난 뒤 아베 총리가 “만나고 싶다”고 연락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 아베 총리는 ‘북풍’ 덕에 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 적절한 시기에 핵이니 미사일이니 북풍이 불어줬고 아베 총리는 ‘국민의 안전’을 내세워 대중의 공포심에 기름을 부으며 정권의 입지를 굳혔다.
거슬러 올라가면 젊은 정치인 아베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고 차기 총리감으로 부상한 계기도 북한이었다. 그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전격 방북 때 관방부장관으로 수행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북-일 국교 정상화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진심으로 응할 생각이었던 듯, 일본인 납치를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때 아베는 납치 문제를 들어 ‘평양선언 서명을 보류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아베의 결기는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보수우익의 갈채를 받았다. 이후 아베는 납치 문제 해결을 자신의 ‘필생의 과제(life work)’라고 밝히고 있다.
전 세계가 김정은의 도발에 속수무책인 가운데, 아베가 트럼프의 메신저를 자처하며 홀연히 나타나 흐름을 바꾼다면 세계의 주목과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여기 더해 자신의 라이프워크인 납치 문제를 해결할 길도 열린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물론 그가 정말 ‘모험’에 나설지는 알 수 없다. 전격 방북은 리스크도 큰, 말 그대로 ‘모험’이다. 북풍은 이번에도 아베 총리를 도와줄까.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