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에고 발레오(Sivales bene est, ego valeo·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라틴어 수업(한동일·흐름출판·2017)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쓴 게 10년은 된 것 같다. 군대에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할 때면 전화보다는 편지를 선호했다. 고이 쓴 편지를 봉투에 넣고 풀로 입구를 봉하면 보이진 않아도 마음을 떼어 놓은 것 같았다. 늘 ‘보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을 더 힘줘서 썼다. 상대방 주소와 이름이 삐뚤빼뚤하지 않게 경필대회처럼 온 정신을 집중했다. 소중한 사람일수록 우표 붙이는 것까지 정성을 다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로 시작하는 김광진의 ‘편지’(2000년 3집 수록)가 있다. 가사는 ‘배려’에 대한 내용이다.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 본인의 감정은 숨긴 채 물러나는 남자 얘기다. 클라이맥스는 ‘행여 이맘 다칠까 근심은 접어두오’ 구절이다.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외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건 나보다 상대를 위하는 마음이었다.
마음은 키보드나 스마트폰이 아닌 손으로 담을 때 더 정중하고 차분하게 전달된다. 로마인들은 편지를 쓸 때 “그대가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인사를 애용했다. 상대방의 안녕으로 내 안부를 대신하는 마음이 따뜻하다. 누군가의 안부를 묻기는커녕 나 자신도 돌볼 여유가 없는 시대, 반가운 편지 한 통으로 종일 가슴 설레던 예전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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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이 담긴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일본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1999년 국내 개봉)에서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는 엉뚱한 곳에 전달되지만 받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 몰랐던 사랑을 발견하게 해준다. 영화 속 주인공은 연인이 조난당한 설산을 향해 편지를 쓰듯 사랑의 인사를 외친다.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쓰.’(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냅니다) 오랜 만에 편지를 써보자. 각박한 일상, 잊고 있던 배려와 사랑을 짜내서.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