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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의 프리킥]동맹과 민족 사이에 낀 문 대통령의 고민

입력 | 2017-07-21 03:00:00


허문명 논설위원

강대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질서를 재편하고 약소국은 살아남기 위해 국제질서에 대응하고 적응한다. 지정학적으로 독일과 프랑스에 낀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나름대로 중립과 자율을 유지하며 안전을 도모해 왔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무참히 짓밟혔다. 전후(戰後) 미소 냉전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공동체(EC)가 만들어지자 즉각 가입한다. 피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서방 진영에 가담함으로써 비로소 안전과 번영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북핵, 남북만의 문제 아니다

역대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은 한미동맹과 남북관계 중 어디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기조가 결정됐다고 할 수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엔 남북관계, 즉 민족에 방점이 찍혔다면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동맹을 중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남북화해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한미동맹에서 남북관계로 중심이 이동하면서 ‘제재와 대화병행론’ ‘북핵 동결과 폐기 2단계론’ ‘북핵은 한미일 공조로, 인도적 대화는 한국 주도 투트랙론’으로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정세가 바뀌고 북핵의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북핵은 남북관계 이슈에서 북미이슈, 국제이슈로 업그레이드됐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2009∼2017년) 땐 ‘한국도 이제 경제적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으니 북핵은 한국 주도로 해라, 미국은 상황에 따라 돕겠다’는 기류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 내에서는 북핵을 실질적 위협으로 느끼며 미국과 북한의 지상전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아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고의 압박과 관여’로 대북 정책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 보인다. “우리에겐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다”는 대통령 말에서는 치열한 국제질서 전장(戰場)을 체험한 뒤 얻은 솔직한 성찰과 위축된 심경이 잘 읽힌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주인은 한국’이라며 대화를 하려 해도 상대방 김정은의 입장은 많이 달라 보인다.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로 미국과 (평화협정) 담판을 지으라’는 지령문을 북한 해외 공관에 하달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을 평화협정을 체결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면서 말이다. ICBM으로 협박하며 북-미 대화의 장을 열어 평화협상, 즉 미군 철수, 한미연합사 해체를 달성하겠다는 저의를 드러낸 것이다. 1000여 개에 달하는 장마당과 북-중 밀무역으로 경제도 좋기 때문에 이전에 비해 인도적 지원을 절실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 것 같다.

군사회담 제안은 경솔했다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훈련이 다음 달 코앞인데, 한국 정부가 북한에 군사회담을 제안한 것은 ‘무장 해제적’ 복안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경솔했다. 민족의 번영과 융성은 좋은 일이지만 민족의 미래는 동맹에서 온다. 협상의 주도권은 힘에서 나온다. 접근 전략을 바꿔 각종 회담을 유보하고 북핵을 압도하는 한미일 집단안보체제 구축에 힘을 쏟았으면 한다. 그러면 우리가 부르지 않아도 북한이 먼저 회담 제안을 하고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협상의 주도권은 우리가 갖게 된다.

대통령 말대로 미중일러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의 자율권은 크지 않다. 한국은 약소국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