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과 김일성은 같은 공산당원이었기에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했다. 본래 박헌영이 장악한 서울의 공산당이 ‘당 중앙’이었고 김일성이 장악한 것이 그 산하의 ‘북조선 분국’이었다. 김일성은 북조선 분국의 주도권을 장악한 후 다른 정치세력과의 통일전선기구를 수립하고 임시인민위원회라고 불렀다. 그러나 남조선의 통일전선은 좌우합작을 미 군정청이 지원하고 있어 인민당의 여운형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고 박헌영은 소외될 것을 두려워했다. 김일성은 좌우합작에 적극적인 여운형을 선호했다. 나중에 결국 북한에서 박헌영은 숙청되고 여운형의 자식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이승만은 뒤늦게 귀국해 한민당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만들어 자기 세력 구축에 나섰다. 이승만은 좌우합작에 가장 부정적이었고, 여운형 김규식 등 중도파를 내세워 좌우합작을 지원한 존 하지 군정청장과 대립했다. 미군정의 좌우합작 지원은 1947년 그리스의 공산화 위협에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되고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되면서 사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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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