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6월 27일 국무회의서 무슨 일이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지난달 27일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공사 일시 중단 결정을 발표하며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강조했다.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며 부처 간 이견은 물론이고 한국수력원자력, 시공사, 지역 주민 등 이해 관계자들이 처할 상황을 고려했음을 강조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당시 국무회의 회의록을 보면 정부가 강조했던 치열한 의견 조율 과정은 찾기 어렵다. 일시 공사 중단에 따를 파급효과와 각종 문제점에 대해서도 토론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과 총리의 의견이 늘 옳다는 보장이 없다. 언제든 이의를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고 강조했지만,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이 당부는 공염불이 됐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가장 첨예한 이슈였던 신고리 5, 6호기 공사 일시 중단 결정은 이런 절차 없이 ‘구두보고 및 협조사항’으로 다뤄졌다.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는 “국무회의 구두보고는 그냥 한 번 이야기하고 지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무회의 안건은 5일 전인 지난달 22일 비공개 차관회의에서 결정됐는데 공론화위원회 구성이나 신고리 5, 6호기 공사 일시 중단은 안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최종 공사 중단을 공론화위에 맡긴다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익명을 요구한 이날 차관회의 참석자는 “신고리 문제가 다뤄질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해 장관에게 보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신고리 문제는 국무회의에서 사전 예고됐던 9개 안건의 논의가 끝난 뒤 국조실장의 구두보고로 테이블에 올랐다. 8조6000억 원의 사업비와 공정 상황(29%) 등이 언급됐고, 공사를 일시 중단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공사 일시 중단에 따른 피해 규모와 보상 방안, 찬반양론 등은 언급되지도 않았고, 논의도 없었다.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부가 원전의 부작용만 바라보다 갈등 요인 검토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 관계 부처 장관 ‘침묵’
김 장관 발언이 끝나자 문 대통령은 “일단 공사는 중단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주무 부처인 산업부 주형환 장관과 미래창조과학부 최양희 장관은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국무위원들의 침묵 속에 신고리 5, 6호기 공사 일시 중단은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산업부, 미래부 등 관계 부처는 당시 국무회의에서 회의록에 기록되지 않은 의견 개진이 있었는지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원전 공사 중단은 에너지 백년대계를 좌우하는 사안인 만큼 구두보고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향후 공사비 지급 등을 두고 법적 소송이 발생할 때 ‘정부가 적법한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구두보고는 사안이 중요하지 않거나, 반대로 아주 긴급해서 공식 절차를 밟기 어려울 때로 국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국무회의에서 이런 방식으로 안건을 처리했다가 문제가 된 사례도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국무회의 긴급 즉석 안건을 통해 의결했다가 거센 여론의 반발에 부딪힌 게 대표적이다. 그나마 이 사안은 안건으로 처리가 됐지만 신고리 구두보고는 제대로 된 안건조차 아니었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 / 최혜령 기자